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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만물상] 영빈관의 용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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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엊그제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의 영빈관에 용접공 등 이 회사 외국인 기능공 42명이 초청받아 각별한 대접을 받았다. 세계 1위 조선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가 플라즈마 자동 용접 등 특수 용접 기술이다.

▶두 개의 금속 물체를 붙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 용접이다. 휴대폰, 아파트, 자동차, 선박, 비행기에서부터 최첨단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의 뿌리 기술이다. 용접의 역사는 금속의 역사만큼 길다. 기원전 3000년경 청동기 시대에 수메르인들이 땜질로 이어 붙여 만든 칼이 발굴됐다. 불 속에 철광석을 넣어 무르게 한 다음 망치로 두들겨 붙인 최초의 단조(鍛造) 용접이다. 1801년 영국의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가 배터리를 이용해 두 개의 탄소 막대 사이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줬다. 이때부터 전기 용접 연구가 시작됐다. 19세기 중반부터 다양한 용접 기술이 개발돼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군함 건조 등이 용이해졌다.

▶용접공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업 역군이다. 1971년 시작한 서울 반포아파트 건설 현장은 대규모 용접공 교육장이나 다름없었다. 라디에이터에 온수를 순환시켜 난방하는 구조였다. 틈이 있으면 물이 새기 때문에 꼼꼼한 용접이 중요했다. 정주영 회장이 조선업에 뛰어들 때 남들은 무모하다고 했지만 정 회장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조선이라고 공장 짓는 것과 다를 바 뭐 있나. 철판 잘라 용접하고 엔진 올려놓는 일인데 건설 현장에서 하던 일 아닌가.”(정주영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1970년대에 국내 최초의 산업용 로봇이 도입됐는데 용접용 로봇이었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포니 차를 만들 때 스폿 용접용 로봇이 사람 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1984년 현대그룹에 첨단 로봇사업팀이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 용접 때문에 현대중공업에 배치됐다. 조선업에 뛰어들어 용접공 길러내느라 총력전을 펴본 적 있는 정주영 회장이 “용접 수요가 많은 조선소가 로봇 사업을 담당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늘날 선박 건조에서 용접 자동화는 많이 진척됐다. 그럼에도 미세한 작업에서는 숙련된 용접 전문 인력의 판단과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조선업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용접공을 모셔온다. 정작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3D 직종으로 기피하고, 얼마 안 되는 젊은 용접공조차 기능 인력을 우대하는 호주 등지로의 이민을 꿈꾼다. 숙련된 기능 인력이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이런 인력의 미스매치도 줄어들 것이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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