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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메시아 병 걸린 정치인들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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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사바하’도 재개봉했다. 같은 오컬트 영화이지만 오락성이 강한 ‘파묘’보다 훨씬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의: 이후부터는 ‘사바하’의 간접 스포일러) 회의주의 목사(이정재)가 수상한 사이비종교를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교주가 단순히 미륵불을 참칭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정말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으며 선행도 꽤 했던 존재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훗날 태어날 대적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뒤 대적자를 미리 제거하고자 무고한 생명을 해치며 타락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선(善)이며 잠재적 대적자들은 악(惡)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그 예언은 교주가 진정한 메시아로 거듭나느냐 악마로 전락하느냐의 시험이었던 셈이다.



메시아의 타락 다룬 영화 ‘사바하’

예수도 ‘파시즘 독재’ 유혹 받아

고금 독재자 공통점은 메시아 병

최근엔 정치 팬덤이 병증 부추겨

예수는 악마의 달콤한 제안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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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실주의 대가 이반 크람스 코이(1837~1887)의 그림 ‘광야의 그리스도’(1872).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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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자인 장 감독은 그리스도교적인 이야기를 메시아 신앙과 비슷한 불교의 미륵 신앙에 녹여서 독특한 영화 ‘사바하’를 만들어냈다. 교주가 든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홀로 고행할 때 받은 유혹을 닮았다. 이때 악마는 세 가지 제안을 했다. “당신이 신의 아들이면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 당신이 신의 아들이라면 천사가 받쳐줄 것이다.” “나에게 엎드려 절을 하라. 그러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주겠다.”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는 이 제안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진정한 메시아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이 에피소드를 가장 탁월하게 재해석한 것은 단연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등장하는 ‘대심문관’ 이야기일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종교재판 시대에 절대 권력자인 대심문관 앞에 진짜 예수가 나타난다. 그러나 대심문관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왜 우리를 방해하러 왔소?”라고 따진다. 그리고는 “우리는 사실 당신이 거부했던 악마의 세 가지 제안을 당신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소”라고 말한다. 즉 민중에게 빵을 나눠주고 기적을 보이고 이단을 심판해 세상 모든 나라의 믿음을 통일시켜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심문관은 예수가 왜 악마의 제안을 물리쳤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인간을 먹을 것 등의 물질과 신비의 기적으로 굴복시키고 강제로 믿음을 통일하는 대신 인간이 자유롭게 신을 믿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 예수는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했소”라고 그는 말한다.

이어지는 대심문관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유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그들은 먹을 것을 위해, 돈을 위해, 자유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으며, 기적에 매달리며, 다양한 의견의 혼재를 견디지 못하고 통일된 정답을 원한다. 그러면 당신 예수는 이런 인간들은 버릴 것인가? 자유의지로 당신을 믿는 소수의 지혜롭고 강한 인간들만 돌볼 것인가? 우리는 당신의 이름으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기적과 통일된 정답으로 그들의 영혼을 지배해서 평화를 주었다. 우리를 방해하지 말라!’

이것이야말로 바로 전체주의 독재 아닌가.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대심문관’ 이야기를 쓴 것으로 설정된 회의주의 지식인 이반 카라마조프는 말한다. 대심문관은 진심으로 나약한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열망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그런 파시즘적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이다. “모든 운동의 선두에 섰던 인간 중에는 반드시 대심문관 같은 인간이 있었다”고 이반은 단언한다. 과연 그렇지 않은가. 진정 민족이나 국민을 구원하겠다는 열망으로 운동이나 혁명의 지도자로 나선 다음 나중에 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가 되어버린 동서고금의 정치지도자들은 대심문관의 닮은꼴인 것이다.

사적 권력욕에 불탄 독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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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현 감독의 영화 ‘사바하’(2019)의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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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중에는 이처럼 진정한 영웅이었다가 타락한 경우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사적 권력욕에만 불타던 경우도 많았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독재자가 되었을 때 메시아 이미지를 적극 이용했으며 스스로 메시아라 믿었다는 것이다. 중국 현대사 전문가인 네덜란드 역사학자 프랑크 디쾨터는 저서 『독재자가 되는 법: 히틀러부터 김일성까지, 20세기의 개인숭배』에서 이렇게 말한다. “권력을 잡은 독재자가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전략은 다양했다. (…) 결국에는 개인숭배가 가장 효율적이었다.”

공산주의 독재의 경우, 대중에게 어려운 변증법적 유물론 등의 마르크스주의를 설파하기보다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의 지도자를 “특정한 성스러운 존재로 둔갑시켜 공감을 조장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디쾨터는 설명한다. 내셔널리즘 독재의 경우에도 무솔리니는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 조장과 적들에 대한 증오를 제외하면 지향하는 바가 모호했으며, "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히틀러는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더해서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히틀러는 신비주의적인 유사 종교에 기초한 유대를 강조하면서 자신을 대중과 하나로 연결된 메시아처럼 포장했다”는 것이다.

독재자 설친 20세기 비극 재발 막아야

걱정스러운 것은 총선을 앞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저런 메시아 병(病) 증세를 보이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떠받치는 것은 정치 팬덤으로서, 미성숙하던 시절의 대중문화 팬덤을 매우 닮았다. 정치 팬덤은 정책보다 정치인 개인, 즉 그들의 ‘아이돌’에 대한 애정에 집중하고 ‘조공’을 바치고 소셜미디어에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싸우며 증오를 불태운다. 그들은 또한 소셜미디어에 찬양 글과 그림을 올리는데, 그 중엔 사법부에 의해 각종 비리 범죄로 유죄 판결 난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 묘사한 그림까지 있다. 문제의 정치인들은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그 그림을 공유하고 전파한다. 메시아 병 말기 증상이다.

이들 정치인은 아직은 20세기 독재자들과 같은 힘의 스케일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매우 위험하다. 그들은 20세기 독재자들의 두 가지 유형 중에서 ‘한때는 진정 영웅이었으나 타락한 메시아가 된 유형’보다 ‘처음부터 본인 권력이 목적이지만 합당한 사법적 판결을 마치 상대 진영의 종교적 박해인 것처럼 포장하고 자신을 순교자적 영웅으로 포장해서 상대 진영에 대해 막연한 혐오를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아가 된 유형’이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이 밉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메시아이거나 대안인지 한 번 냉정하게 돌아보자. 그것이 메시아 병 걸린 독재자들이 설친 20세기 비극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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