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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기자수첩]한미약품그룹 분쟁, '동학개미' 승리가 준 큰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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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던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은 통합(한미사이언스-OCI) 반대파인 창업주의 두 아들(형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지분 5% 이상 대주주인 '큰손(국민연금)' 지지만 놓고 보면 통합 찬성파인 모녀측이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의 형제측 지지가 승부를 갈랐다. 결과적으로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는 '형제의 승리'이자 '소액주주의 승리'였다. 반면 제약사와 태양광 기업의 '이종 결합의 꿈'은 무산됐다.

이번 주총을 놓고 "우리나라 자본시장 역사상 이렇게까지 개미들의 중요성이 부각된 적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과거 시가총액이 낮은 상장사의 경우 소액주주가 뭉쳐 주총 결과를 좌우한 적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한미약품그룹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시총만 봐도 약 3조원인 중견기업이자 손꼽히는 제약사다. 이 정도 규모 기업의 분쟁에서 소액주주의 목소리는 늘 '계란으로 바위치기' 취급을 받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2년 12월 결산 상장법인 기준 우리나라 주식 소유자는 1441만명이다. 2020년의 914만명에 비해 2년 만에 527만명이 늘었다. 국내 증시 위주로 투자하는 소액주주를 뜻하는 '동학 개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숫자만 증가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전자투표나 의결권 대행 플랫폼 등을 이용해 주총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미사이언스 주총 결과는 이런 '동학개미운동'이 만든 자본시장의 새 역사다. 소액주주 연대 플랫폼 '액트'를 통해 형제측을 지지한 지분만 약 2%에 달했다. 주총 전 대주주 국민연금의 모녀측 지지로 판세가 역전되자 "우리가 뭉치면 국민연금보다 지분이 더 많다"며 결집했다. '오너가' 양측 모두 승부를 예측할 수 없던 상황에서 "계란이 모이면 바위를 깰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 소액주주였다. 형제측 관계자는 "압도적인 지지에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동학개미'의 행보는 심상치 않다. 최근 과격한 주주환원 요구에 오히려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인다.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가치 제고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올해 주총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이 표 대결에서 대부분 압도적으로 패배한 이유 중 하나도 소액주주의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주인은 기업 총수나 회장, 대주주가 전부가 아니다. 소액주주 역시 회사의 '또 다른 주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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