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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별세…‘기술 경영’으로 글로벌 기업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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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효성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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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하고 ‘기술경영’ 철학을 고수했던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효성그룹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조 명예회장은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 부정맥 증상 등으로 여러 차례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의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에서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55년 일본 히비야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에 입학해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교수를 꿈꾸며 1966년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그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해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건설을 주도하며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70년 효성그룹의 주력사인 동양나이론(효성그룹의 전신) 대표이사 사장을 필두로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 그룹의 주력계열사들을 맡았다.

1982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경영 혁신을 주도하면서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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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서 직원들과 대화중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효성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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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인 조 명예회장은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경영했다. 신혼여행지를 동양나이론 기술자들이 나일론 생산기술 교육 연수를 받던 이탈리아 포를리로 택했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조 명예회장의 집념은 유달랐다.

특히 임직원들에게 독자적인 기술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조 명예회장은 1990년 미국, 독일, 일본에서만 보유하고 있던 스판덱스 기술 독자 개발을 위해 사내 반대에도 연구·개발(R&D)과 투자에 매진했다.

3년간 이어진 연구 끝에 효성은 1992년 국내 최초로 스판덱스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효성의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는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가 됐다.

스판덱스는 원상회복률이 97%에 이를 정도로 신축성이 뛰어나 란제리와 스타킹, 기저귀, 아웃도어 등 활용 범위가 넓은 소재다. 조 명예회장은 스판덱스의 기술 개발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업 전망이 밝다고 판단해 진출을 결심했다.

이후 국내 최초로 강철보다 10배나 강력하면서 무게는 1/4에 불과한 고강도 소재 탄소섬유와 세계 최초로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 폴리케톤 개발에도 성공했다. 또 자동차 보강재로 사용되는 페트 타이어코드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확보했다.

조 명예회장은 국제관계에도 밝아 민간외교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와세다대 동창인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와도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을 만큼 재계의 대표 ‘일본통’으로 불렸다.

풍부한 국제 인맥을 바탕으로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미재계회의, 한일경제협회,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한중재계회의 등 재계의 국제 교류단체를 이끌며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가교 역할도 적극 펼쳤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에는 양국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자 양국 재계 인사들과 미국 행정부·의회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는 등 민간외교의 중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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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대통령과 경제활력회복을 위한 대기업대표와의 대화에 앞서 정몽구 현대차회장, 조양호 한진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사진 가운데). 최태원 SK회장, 이건희 삼성회장 등이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효성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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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효성물산의 무리한 수출로 1조원대의 적자를 내는 등 파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에 조 명예회장은 효성T&C,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주력 4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해 회사를 살려냈다.

그러나 효성물산의 1조원대 부실을 10여년에 걸쳐 나눠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정리해 나가다가 회삿돈 횡령 및 배임, 세금포탈 등의 혐의가 드러나면서 본인은 물론 장남 조현준 회장이 수년간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시작된 검찰의 효성 일가 비자금 의혹 수사는 조 명예회장이 이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라는 이유로 봐주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조 명예회장은 동생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이 이 전 대통령의 셋째딸인 이수연씨와 결혼하면서 사돈 관계가 됐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던 조 명예회장은 경선 중 “경제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한편, 장자승계를 이어가던 효성은 최근 지배구조를 둘로 나눠 ‘형제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

장남 조현준 회장이 중공업과 화학 부문을 맡고, 삼남 조현상 부회장이 신설지주를 맡아 독립하는 형태다. 효성은 지주사별 책임경영 강화를 이유로 들었다.

조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형인 조현준 회장과 경영권 갈등 끝에 2013년 효성그룹을 떠났다. 이후 수백억원 횡령·배임 혐의로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며 형제들과 선을 그었다.

조 명예회장은 수출유공 대통령 표창, 금탑산업훈장, 한국경영자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장,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일경제협회장 등 경제단체에서도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선한 공로로 제8회 한일포럼상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송광자씨와 사이에 3남을 뒀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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