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받은 1501명 재심, 1350명 무죄로 뒤집혀
재심은 유죄를 무죄로 뒤집을 만한 증거가 새로 나왔을 때 재판을 다시 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재심 기록을 보면 오씨는 ‘내 운명이 왜 이렇게 (억울하게) 됐나’라고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아픔을 겪은 오씨에게 (재심 무죄 선고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자 오씨는 “감사하다”고 했다.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에서 남로당 무장 폭동이 도화선이 돼 좌익 세력이 집단 소요 사태를 일으키자 정부가 군경을 투입해 진압하는 과정(1948~1954년)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오씨는 20대 때 제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4·3 사건에 휘말려 1949년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감형받아 나온 뒤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또 무고함을 주장할 재심 청구도 하지 못했다.
오씨가 무죄일 가능성이 있다는 단서는 검찰의 ‘제주 4·3 사건 직권 재심 합동 수행단’이 찾아냈다. 합동 수행단은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졌다.
직권 재심은 유죄를 확정받은 당사자가 재심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검찰이 대신 청구하는 것이다. 합동 수행단이 직권 재심 대상자를 추리는 과정에서 오씨가 4·3 사건 당시 불법 구금 등을 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수사기관이 불법 구금 등을 통해 얻은 자료는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 이에 따라 검찰이 오씨에 대한 유죄판결을 무죄로 뒤집기 위한 재심 청구를 한 것이다.
3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지난 2022년 2월부터 제주 4·3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1501명에 대해 직권 재심을 청구했고 1350명(90%)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나머지 151명은 재심 심리를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재심을 청구할 사례를 더 찾아내 적극적으로 청구하겠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
다른 과거사 사건에서도 검찰이 직권 재심을 청구하면서 무죄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검찰은 지난 2018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183명에 대해 직권 재심을 청구했고, 이 가운데 182명(99.5%)이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나머지 1명은 재심 심리 중이다. 또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88명에 대해서도 ‘죄 안 됨’으로 처분을 변경했다고 한다.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만 기소는 하지 않는다는 처분이지만, 죄 안 됨은 아예 범죄 혐의부터 인정되지 않는다는 처분이다. 이에 따라 조익문 광주교통공사 사장, 영화 ‘꽃잎’을 연출한 장선우 감독 등이 죄 안 됨 처분을 받았다.
이와 함께 검찰은 ‘납북 귀환 어부 사건’ 피해자 81명에 대해 직권 재심을 청구했고, 60명(74%)이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나머지 21명은 재심 심리 중이다. 납북 귀환 어부 사건은 1960~1970년대 해상에서 조업하던 어부들이 납북됐다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린 사건이다.
한 법조인은 “과거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권 재심 청구는 스스로 잘못 기소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과 관련해 법적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보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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