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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尹 "외국인 유학생 가사도우미로"…서빙해도 최저임금 받는데, 왜?[김용훈의 먹고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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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녹색정의당 이자스민 의원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이주 가사·돌봄노동 최저임금 차등적용 발언 규탄 기자회견에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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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해결만큼 중요한 과제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부담을 덜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내국인 가사 도우미와 간병인 분들의 임금 수준은 맞벌이 부부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큰 것이 현실입니다. 국내 거주 16만3000명 외국인 유학생과 3만9000명 결혼이민자 가족분들 가사 육아 분야에 취업토록 허용하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 됩니다. 그러면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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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와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보다 1만9200명(7.7%) 줄어들며 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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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월 인구동향’을 보면, 올 1월 출생아 수는 1년 전보다 1788명(7.7%) 감소한 2만144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사망자가 출생아 수를 웃도는 인구 ‘데드크로스’는 51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간 합계출산율이 0.6명대에 그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부담을 덜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진단도 틀린 게 아닙니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을 가사, 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비자 체계를 개편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가사근로자로 일할 수 있게 하자는 해결 방안은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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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원어민 과외 네이버 카페.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 유학생 다수가 한국인을 상대로 중국어 원어민 회화 강사로 일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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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시장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외국인 유학생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한국어가 유창하다면 더더욱 일할 곳은 많죠. 필리핀 등 영어권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 아니더라도 중국, 베트남 등에서 온 학생들도 해당 국가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훌륭한 ‘원어민’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식당이나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거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최저임금을 보장받습니다. 그런 외국인 유학생이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마다하고 굳이 가사, 육아 분야에서 일할 리 없겠죠.

지난 1919년 설립된 UN 산하기구 국제노동기구(ILO)는 고용과 직업에서 차별을 금지토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ILO에 가입했고, 2021년 4월 ILO 핵심협약 8개 중 7개를 정식 비준(2022년 4월 발효)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고용 및 직업상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제111호)’입니다.또, 우리 근로기준법 제16조에는 국적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토록 돼 있고, 헌법의 평등권에도 위배된다고 볼 수 있어요. 돌봄 근로자나 외국인이라고 차별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다만 이는 ‘근로자’에 적용되는 법입니다. 유학생이나 결혼이민자와 ‘사적’으로 ‘돌봄 고용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들은 지난 2022년 6월부터 우리 정부가 시행 중인 가사근로자법에 해당하는 가사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ILO 협약 위반도 아니고 근로기준법 위반도 아닙니다. 노동계에선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 가족들을 가사근로자법이 적용되지 않는 비공식 노동시장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가사근로자가 11만명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근로자로 인정받는 이들은 극소수입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맞벌이 부부의 육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외국인 유학생이나 결혼 이민자에 전가시키는 게 맞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필리핀에서 출생했지만 1998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후 이주민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은 전날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발언에 대해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인간다운 삶 실현이라는 최저임금의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저출생 해결을 위해, 우리보다 조금 못 사는 나라 국민에게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을 주면서 육아를 맡기는 게 정말 맞는 일일까요.

※[김용훈의 먹고사니즘]은 김용훈 기자가 정책 수용자의 입장에서 정책에 대해 논하는 연재물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면 언제든 제보(fact0514@heraldcorp.com) 주세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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