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 민영환의 유서, 등록문화재 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포 형제들은…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며 독립운동가인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이 일제에 항거해 자결하면서 남긴 유서가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민영환 유서(명함)’와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계획이라고 11일 예고했다.

세계일보

민영환의 유서가 담긴 명함 앞면(왼쪽)과 뒷면. 문화재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영환 유서(명함)는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이 자결하면서 남겼다. 당시 그는 국민과 경성에 머무르던 외국 사절, 황제에게 올리는 유서를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유서가 적힌 명함은 그가 생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가로 6㎝, 세로 9.2㎝ 크기다. 민영환의 이름이 한글, 한자, 영어로 표기돼 있다.

민영환은 연필로 명함의 앞·뒷면 여백에 한자로 빼곡하게 유서를 적었다. 2000만 동포를 향해 ‘죽어도 죽지 않는다’고 외치며 자유와 독립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유서에서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지하에서라도 여러분을 기어이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포 형제들은 천만 배나 마음과 기운을 더해 지기(의지와 기개)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러면 죽어서라도 마땅히 저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라며 “오호!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대한제국 2000만 동포에게 영결을 고하노라”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명함은 유족이 봉투에 넣은 채로 보관하다 1958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은 “자결 순국한 충정(忠正·민영환의 시호)공의 정신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뛰어난 사료이자 문화유산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보존·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여수 거문도 구 삼산면 의사당. 문화재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함께 등록 예고된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근현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1885년 영국군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던 사건 이후 시기별 항만시설, 군사시설, 수산업 관련 시설 흔적이 남아 있으며, 어촌 마을의 근대 생활사도 살펴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국 상하이와 거문도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흔적이 남아 있는 거문도 해저 통신시설,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역사를 보여주는 삼산면 의사당 건물 등은 연구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은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로 확정할 계획이다. 국가등록문화재는 국보, 보물 등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유산 가운데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났으며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산을 뜻한다. 올해 5월 17일부터 ‘국가유산’ 체제로 바뀌면서 국가등록문화재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될 예정이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