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로 활동해온 스테파니 클라인 알브란트. 사진 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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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도 열정을 막진 못했다. 스테파니 클라인 알브란트 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이야기다. 그는 유엔이 엄선한 대북 제재 전문가 7인 중 한 명으로 2014년부터 활약했다. 소화액인 담즙을 분비하는 담관에 암이 발병하면서 2019년부터는 상임으로는 활동하지 못했으나 비상임으로 활동과 연구는 계속해왔다. 그는 북한이 미국 및 한국, 유엔의 제재망을 교묘히 뚫는 현장을 포착하고 예측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 활동에 그가 큰 애정을 갖는 까닭이다. 그 패널은 그러나 이달 중단된다. 러시아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지난달 전문가 패널의 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안보리는 매년 이 패널의 활동을 투표를 통해 연장해왔는데, 올해 연장안 투표에서 러시아가 지난달 거부권을 행사했다. 알브란트 박사는 14일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러시아로 인한 패널 강제 종료는 북한의 도발과 자국민에 대한 인권 침해를 위한 전략적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라며 "국제사회가 어떻게든 (패널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 강제 종료의 의미는.
A : "북한은 그간 대북 제재망에 교묘한 구멍을 뚫으며 사이버 테러 등을 통해 각종 도발을 위한 자금을 충당해왔다. 패널은 유엔을 대표해 그간 북한이 선박 세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재망을 피하는 행위를 적발했다. 러시아가 패널 활동에 제동을 건 것은 북한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닦아준 것과 다름 없다. 지금은 세계가 (미 대선 및 우크라이나ㆍ가자지구 전쟁 등) 북한에 집중할 수 없는 시기이고, 따라서 북한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북한은 지난 몇 년 간 이미, 사이버 테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방법을 개발해왔다. 시간이 많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전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 위한 결의안 표결을 진행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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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패널을 대체 또는 부활시킬 방법은.
A : "지금이 중요한 분기점이다. 러시아 같은 일부 국가의 정치적 책략에 넘어가면 안 된다. 부활이 어렵다면,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유엔의 프레임 밖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 등이다. 하지만 유엔 밖의 조직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알브란트 박사는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유엔에서 대북 전문가로 20년 이상 일했다. 유엔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에도 능통하고, 중국어도 구사한다. 그는 패널로 임명된 후 북한 측과도 접촉하려 노력했으나 허사였다고 털어놨다. 가장 힘들었다는 부분이다. 그는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 아세안 일부 국가들과 손을 잡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해왔다"며 "앞으로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Q :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텐데.
A : "유엔 소속 대북 제재 전문가로 활동한다는 것은 때로 자국의 입장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한때 북한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벨기에 대한 제재를 취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던 적이 있는데, 이때 우리 패널의 입장은 (내 나라인) 미국과는 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밀어붙였고, 우리의 판단이 맞았다."
2021년 5월 북한 인근 해역에 '천마산(CHON MA SAN)' 호와 '남대봉(NAM DAE BONG, DIAMOND 8) 호가 나란히 떠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공개한 중간보고서에 포함된 위성사진이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미국의소리(VO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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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내년부터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인 한국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A :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국은 핵심 역할을 하는 국가이며, 내년부터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기에 더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됐다.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는 필수이며 국방력도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안보리에서 비상임이사국으로서의 레버리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 전후 빈곤을 딛고 오늘날의 번영을 일군 한국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본다."
Q : 암 투병 중인데.
A : "(암) 선고를 받은 게 3년 전이다. 희귀암 말기이지만 잘 버티고 있다. 내가 열정을 갖고 있는 일, 대북 제재 패널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 방사선 치료는 꽤나 고통스럽지만, 평화와 정의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만큼 보람이 큰 일도 없다. 암 투병 중이라고 해도 출장도 잘 다닌다. 대북 제재를 위해서 할 일이 많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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