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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기자수첩] 사과는 국무위원 아닌 국민에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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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가 생중계되는 가운데 한 시민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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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여당의 총선 참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방향은 옳았고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는 대통령에게 무슨 변화와 쇄신을 기대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야당의 비판은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여당 당선자들 사이에서 감지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국민의힘 당선자 대다수는 공개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기자와 통화한 이 중엔 “국무회의 모두 발언이라는 형식, 야당과의 협치가 빠진 내용 모두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윤상현 인천 동·미추홀을 당선자는 “‘모든 게 부족한 내 책임이다’ ‘나부터 변하겠다’는 식의 메시지가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용태 경기 포천·가평 당선자는 “정부가 일을 하려면 야당의 동의가 필요한데, 협치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고 했다.

“챙겨보지 않아서 윤 대통령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실망할 게 있겠느냐”는 당선자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남았다. 그런데 ‘악성 댓글’보다 무섭다는 무관심과 냉담함이 여당 안에서도 자라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비공개회의 때 나온 대통령의 발언을 언론에 소개했다. “국민께 죄송하다. 무엇보다도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지 못하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공개 발언 이후 여론이 심상치 않자 사과 발언을 추가 공개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하면서 국민이 지켜보는 생중계 때가 아니라 비공개회의 때 국무위원들 앞에서 한다는 건 어색하다.

윤 대통령은 2022년 3·9 대선 승리 이튿날 당선 인사 기자회견에서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했다. 윤 정부 중간 평가로 불린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게 엿새 전 일이다. 국민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때 지도자의 말은 힘을 얻는다. 그것이 “더 낮은 자세로 소통하겠다”는 이날 윤 대통령의 약속과도 어울리는 방식이다.

[김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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