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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美에 첨단 기술 뺏길라" 9조 원 보조금에 담긴 K반도체 위험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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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삼성전자에 '보조금 9조 원' 통 큰 선물
尹 정부, 세액 공제에도 전기료 올라 비용 부담
전체 투자 대비 세액 공제율은 최대 3.5%에 그쳐
"정책 엇박자 피하고 제대로 된 육성책을"
한국일보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 부지.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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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64억 달러(약 9조 원)의 반도체 투자 보조금 보따리를 주기로 한 결정적 배경삼성전자가 국내와 거의 차이를 두지 않고 첨단 반도체 시설을 미국에 짓기로 약속하면서다. 대만 TSMC가 3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대만과 미국에 첨단 2나노 반도체 시설을 짓기로 한 것과는 다르다. 삼성은 미국의 반도체 업계가 가장 약한 고리로 꼽는 반도체 인재도 4,000만 달러를 들여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보조금을 내세워 사실상 미국이 원하는 점을 거의 다 이룬 셈인데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흐름이면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 기술력을 빠른 시간 안에 대부분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와 업계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K반도체 지키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산업과 정부 지원의 현실을 철저히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또 수출 위주인 국내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한, 보다 정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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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가 수 조 원 반도체 보조금 주는데 삼성전자가 입 꾹 다문 까닭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41516460005921)


1조9,468억 원. 'K칩스법'으로 불린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적용해 정부가 2023년 깎은 세금의 추정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최상목 경제부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K칩스법의 세액공제 예상액을 국회에 보냈는데 연구개발(R&D) 세액공제 1조1,968억 원, 시설투자 등 통합 투자세액공제 7,500억 원이었다. 이 법이 반도체를 비롯한 6대 국가전략기술 산업에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별 기업이 체감하는 혜택은 많지 않다.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반도체에 투자한 금액은 48조3,723억 원, 6조5,910억 원이다. 두 기업이 2조 원 가까운 지원금을 몽땅 가져갔다고 해도 지난해 투자 대비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최대 3.5%에 그쳤다. 시설 투자금의 15~25%, R&D의 30~50%를 세액공제해준다지만 반도체 중에서도 일부 첨단 제품 투자에만 혜택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금은 깎아줬지만 전기 요금이 올랐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 기업이 실질적으로 아낀 비용은 더 적었다. 정부는 한국전력의 천문학적 적자를 이유로 지난해 11월 산업용 전기 요금만 올렸다. 한전 상황을 감안하면 (kWh당) 두 자릿수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정부가 민심 악화를 걱정해 주로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전력에 대해서만 손을 댄 것. 당시 전력소비 상위 0.2%만 kWh당 13.5원을 올렸는데 한국일보가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연간 전력 구입량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니 해마다 각각 2,940억 원, 1,360억 원씩 더 내야 했다.

'보조금' 결정하기 전에 각계 의견부터 들어봐야

한국일보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규모.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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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경쟁적으로 반도체 육성책을 내놓으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직접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면서도 지원의 우선순위를 담은 치밀한 전략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책의 엇박자가 생기면 자칫 예산을 쓰고도 업계가 실제 피부로 느끼는 효과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준다면, 어느 분야에 주느냐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처럼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다. 각국의 반도체 경쟁은 애초에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클러스터 경쟁력 향상을 위해 가치 사슬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소부장, 팹리스(반도체 설계), 후공정을 육성해야 한다"며 "반도체 전체 가치 사슬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역시 "보조금을 준다면 소부장 기업이 국내 투자해 반도체 공급망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게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보조금 우선순위를 급하게 정하기보다, 어떤 분야에 보조금을 더 줄지 각계 입장을 모으는 게 먼저"라며 "보조금을 주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특별법을 만들지 기존 법을 개정할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가 약속한 반도체 지원 정책을 제대로 지키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리를 인수해 위탁 제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텐데 경기 평택시 반도체 공장 건설이 몇 년째 지지부진하다"며 "보조금 논의만큼이나 국내에 투자하려는 반도체 기업이 빨리 자리 잡게 용수(물), 전력 같은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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