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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책무구조도' 도입에 은행 임원들 '겸직 기피'…"경쟁력 약화"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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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쏠린다"…자회사 간 임원 겸직 해제, 임원 늘리기도

"책무구조도 부작용, 보완 필요" vs "정상적 수순, 문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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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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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오는 7월 책무구조도 도입을 앞두고 은행권에서 '임원 겸직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계열사 임원을 겸임하는 경우 개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A 은행에서 올해 자회사 간 임원 겸직 사례는 모두 사라졌고, B 은행은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영업 관련 임원 수를 대폭 확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학계에선 '책무구조도의 부작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책무구조도가 지나치게 엄격한 방향으로 도입되면서 임원 겸직의 긍정적 측면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은행권 '임원 겸직 기피' 바람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A 은행에서 임원이 다른 자회사 임원을 함께 맡는 '임원 겸직' 사례는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까지 자산관리(WM) 담당 부행장이 증권·보험 자회사에서도 WM부문 부사장을 겸임했던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은행권의 경우 임원 1명이 2~3개 자회사 임원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산관리 업무의 경우 은행과 증권 등 다수의 자회사에서 진행되는데, 동일한 임원의 지휘 아래 수행되면 자회사 간에 불필요한 경쟁이 제거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당시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임원겸직(수직적 겸직)만 허용됐으나,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 2009년 개정 이후 자회사 간 임원 겸직도 허용돼 왔다.

◇ "책임 분산해야"…영업 담당 임원 늘리기도

업계는 은행권이 '책무구조도 대응'에 나선 것으로 분석한다. 책무구조도는 연이은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6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새 규제로, 금융사 임원 개개인의 업무와 책임 범위를 정해두는 것이 골자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쉽게 말해 책무구조도는 '아래에서 사고 치면 위에서 책임을 져라'는 의미"라면서 "올해 초 은행권의 조직 개편 내용을 살펴보면 임원 책임을 분산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B 은행의 경우 올해 초 조직 개편을 통해 영업 담당 그룹을 1개에서 4개로 나누고 임원도 4명으로 확대했다. 영업 담당 임원이 수십 명의 지역 본부장들까지 관리해 왔는데 금융사고 발생 시 한 임원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부행장을 맡으면서 증권사 부사장도 겸직하는 경우 증권사 사고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며 "2~3곳의 금융사고를 모두 책임을 지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니 자연스레 겸직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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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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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계 "책무구조도 부작용, 보완 필요"


짚어야 할 점은 임원 겸직이 주는 긍정적 효과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그룹의 경우 개별 자회사 입장에서 최선의 전략이 그룹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증권·보험·카드사들이 중첩되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게 된다면, 단일업 금융사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회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임원 겸직'이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9년 자회사 간 임원 겸직이 허용될 당시 "자회사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임원겸직이 필요하다"며 "업무가 동일한 임원의 지휘 아래 수행됨으로써 불필요한 경쟁유인이 제거되고 시너지가 싹트게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임원 겸직 기피 현상에 대해 '책무구조도의 부작용'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위원은 "책무구조도가 지나치게 엄격한 방향으로 도입될 전망으로 알려져 기존의 겸임 임원까지 겸임을 해지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국내 은행그룹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책무구조도 도입에 앞서 겸임 해지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금융당국 "정상적 수순, 문제 아냐"

다만 금융당국은 '정상적인 수순'이라는 입장이다.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었던 일을 재분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겸직 해제 현상에 대해 "은행들이 임원 겸임을 해제하고 있다면 그동안 한 임원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켜서 통제가 안 됐음을 보여 주는 것 아닌가"라며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정상적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그룹 경쟁력 약화 지적에 대해서도 "한 임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겸직을 해제하면 오히려 효율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면서 "겸직 해제는 책무구조도의 부작용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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