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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폭탄 상속세’가 분쟁 도화선…세계 최고 상속세에 승계 갈등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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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은 힘겹고 형제는 싸우고…‘요지경’ K-승계 [스페셜리포트]


매경이코노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조석래 명예회장의 빈소를 방문했다. ‘효성 형제의 난’을 일으킨 조현문 전 부사장은 유가족 명단에서도 빠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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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재계 거목의 별세 소식 이후에는 상속세 이슈가 뒤따른다.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해 총수 지분을 상속받으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국가에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 그룹 오너 일가의 특징 중 하나는 ‘현금’이 없다는 점이다. 자산의 대부분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2021년부터 5년간 분할 납부를 하고 있다. 이들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대에 달한다. 매년 상속세 마련을 위해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거나 주식을 담보로 높은 금리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경영권 약화 위험을 무릅쓰고 지분을 매각할 만큼, 상속세가 과하다는 평가가 재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번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가족 구성원 간 깊은 갈등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상속세가 시발점이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세 자녀(임종윤·주현·종훈)는 창업주인 임성기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으며 총 5300억원 규모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 측은 OCI와의 상속세 납부와 주담대 청산 등을 위해 기업 통합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해왔다. 송 회장은 OCI와 통합으로 한미사이언스 지분 670만2412주를 OCI홀딩스에 넘기며 약 2500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송 회장은 OCI와의 기업 통합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임성기 회장 별세 후 5400억원 규모 상속세가 부과되고 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3만원 이하로 하락했을 때 ‘한미그룹을 통째로 매각하는 상황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절박한 위기감에 휩싸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주식을 상속받은 경우 막대한 상속세를 내는 과정에서 가족 간 불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분을 건드리지 않고 현금을 마련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2019년 조양호 회장 별세 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의 ‘남매의 난’이 빚어졌다. 당시 신고한 상속세는 모두 2700억원이었다.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이 반발했던 주요 이유가 상속세를 부담할 만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아서였다는 뒷얘기도 있다. 상속세를 내려면 중요한 보직을 맡아 연봉을 챙겨야 하는데 적당한 자리를 주지 않아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이 주류였다.

재계에서는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타계 이후 불거질 상속 이슈가 재계의 과도한 상속세에 대해 환기를 일으켜주길 기대한다. 비상장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을 포함한 조 명예회장의 재산은 최소 7000억원이 넘는다. 이에 따라 상속세만 4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행 상속세는 사망자 유산을 기준으로 10~50%의 5단계 초과누진세율로 과세한다. 최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에는 평가액에 할증평가(20% 가산)를 적용해 60%의 세율로 적용될 수 있다. 최고세율(50%)은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지만, 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더 높아지는 구조다.

높은 상속세율 탓에 오너의 지속 경영이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1위 손톱깎이 회사 쓰리쎄븐은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 타계 후 유족들이 150억원의 상속세 부담으로 회사 경영권을 중외홀딩스에 매각했다. 밀폐용기 국내 1위 기업인 락앤락도 창업주 김준일 회장이 상속세 부담을 이유로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 회사를 1조원에 팔았다. 국내 가구 업계 1위 한샘도 경영권을 사모펀드 운용사에 넘겼다. 국내 1위 종자 기업 농우바이오, 역시 국내 1위인 콘돔 제조사 유니더스도 상속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회사를 매각했다. 동진섬유나 에이블씨엔씨 등도 끝내 가업 잇기를 포기했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망 이후 유족들은 상속세로 NXC 지분을 정부에 납부했다. 그 결과 기획재정부가 NXC 2대 주주가 됐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해 상속·증여세 문제를 언급하며 “셀트리온이 국영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도 없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4호 (2024.04.10~2024.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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