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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생물학적 현상은 사회적 낙인에 의해 ‘손상된 정체성’이 된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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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비만과 동성애의 공통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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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I 차이 40~70% 유전자로 결정
동성애는 수많은 동물에게서 관찰
이성애자와 뇌 조직·염색체도 달라
두 가지 모두 개인적인 문제 아냐

위험 회피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이들에 대한 혐오에는 편견이 작용
비만도 동성애도 전염되지 않는다

지난 3월4일이 무슨 날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20년 3월4일 ‘세계비만의날’을 맞아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는 비만에 대한 낙인을 멈추어야 한다는 전 세계 전문가들의 공동 합의문이 실렸다. 비만에 대한 낙인은 특별히 현대사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데, 특히 비만 여성에 대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흔히 사회적 압박을 통해 비만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문제를 악화시킴으로써 심각한 의료 보건 문제가 되고 있다.

비만한 사람들에 대해 갖는 편견이 정당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 간 체질량지수(BMI)의 차이 중 무려 40~70%가 타고나는 유전자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체질량지수는 지방이나 인슐린 대사뿐만 아니라 식욕과 포만감 등을 주관하는 뇌신경회로를 조절하는 많은 유전 변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널리 사용되는 비만 약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위에서 음식물이 배출되는 속도를 지연시키며 뇌 시상하부의 식욕중추에 작용하여 식욕 억제와 포만감 증가를 일으킴으로써 체중 감소에 도움을 준다. 또한 저명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잘 알려진 비만 유전 변이 하나를 고치는 것만으로도 비만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는 갈색지방의 열생성 반응을 무려 7배나 증가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비만은 철저히 생리학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문화적 압력과 개인의 절제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합의된 결론이다.

학술지 ‘네이처’ 발표 연구에 의하면 체질량지수는 지방·인슐린 대사뿐만 아니라
뇌신경회로를 조절하는 많은 유전 변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지난 다섯번째 글 ‘똥과 두려움의 상관관계’에서, 똥으로 상징되는 잠재적 오염물에 대한 회피 기작이 어떻게 이민자에 대한 거부반응이나 인종차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룬 바 있다. 외부에서 온 미지의 상대를 마주칠 때는 안전 최우선의 진화적 전략, 즉 일단 병을 옮길 가능성을 전제하고 무조건 기피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크 샬러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관련된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발전시켜 ‘행동면역계(behavioral immune system)’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즉 혐오는 감염 가능성이 있는 대상과 행위에 대한 회피 행동을 통하여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선제적인 대응 전략이다.

비만에 대한 혐오에도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된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예를 들어 비만한 사람에 대한 반감은 신체적 접촉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데 이는 마치 전염 가능성에 대한 반응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또한 평상시 병원체의 전염에 대한 염려를 가지고 있을수록 혹은 병원균이나 전염병과 연관된 시각 자극들을 통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이후, 비만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강화된다. 비만이 왜 감염 위험성과 연관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비만한 사람들이 게으르고 자기 관리가 부족하다는 그릇된 편견이 그들의 위생 상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한 포괄적인 기피 반응이 비만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추론이지만,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체격이 작으므로 여성 비만인이 더욱 비정상적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이것이 여성에 대한 비만 낙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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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인 5월17일이 무슨 날인지를 아는 사람도 역시 드물 것이다.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질병 부문에서 삭제했고, 이날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날’로 매년 기념되고 있다. 그보다 앞선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과 진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표준 자료로서 정신의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서 동성애라는 진단명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동성애는 정신의학 및 질병의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더 이상 치료의 대상도 아니게 되었다.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에도 ‘행동면역계’가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특히 연구자들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레즈비언(lesbian)에 비해 게이(gay)에 대한 거부감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게이 남성들의 항문성교가 비위생적이라는 관념과 이것이 에이즈를 발생 혹은 전파시키는 원인이라는 오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남성 간 성접촉도 HIV의 감염 경로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게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큰 에이즈 위험군은 가난한 지역의 이성애 여성들이다. 사실 매일 복용하면 HIV 바이러스의 감염 확률을 99% 줄일 수 있는 약이 있고, 잘사는 나라의 게이 남성들 사이에서는 이 약이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아프리카 등지의 가난한 나라 여성들의 경우 이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남자친구는 상대가 자기를 믿지 않거나 바람을 피우려고 한다고 생각해 폭력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들키지 않도록 약병에 탈지면을 넣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막는 방법이 권장된다. 주사 한 번으로 2개월간 예방효과를 주는 새로운 방법도 개발되어 있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소용이 없다. 한마디로, 동성애보다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가난, 문란한 이성애,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 등이 더욱 중대한 사안들인 것이다. 게다가 성행위로 전파될 수 있는 감염성 질환에는 에이즈뿐 아니라 임질, 매독, 유두종 바이러스 감염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당연히 동성보다 이성 간의 성행위를 통한 전파가 훨씬 더 주된 경로다.

일란성 쌍둥이 중 한쪽이 동성애자면 다른 쪽도 동성애자일 확률이
48~50%에 이른다는 것은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력을 입증

비만이 자기관리 부족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동성애 역시 본인이 선택한 성적 지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근거는 차고도 넘친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증거는 바로 수많은 종류의 동물에 동성애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곤충, 거미, 극피동물(성게·불가사리·해삼 등), 선형동물(회충·편충·선충 등)을 포함한 무척추동물과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 주요 척추동물들을 포함하여 무려 1500종에서 동성 간 성행위가 발견되었다.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특히 유인원과 같이 사회를 이루며 살거나 폭력 행위가 빈번한 종들에서 동성애가 더욱 많이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 있어서 동성 간 성행위가 진화적 적응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좁혀보자. 첫째, 통계적으로 형제자매 중에 동성애자가 있는 사람은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일란성 쌍둥이 형제나 자매 중 한쪽이 동성애자면 다른 한 명이 동성애자일 확률이 48~50%에 이른다는 것은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력을 입증한다. 둘째, 많은 수의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모집하여 유전학 분석을 수행한 결과, X 염색체 및 7, 8, 10번 염색체에서 양쪽 그룹 간에 상이한 차이를 보이는 유전 변이들이 발견되었다. 셋째, 이성애자 아들에 비해 동성애자 아들의 어머니와 어머니 쪽 여자 친척들이 많은 아이를 낳는다. 이에 대한 간단명료한 해석은 남자로 하여금 남자를 좋아하게 하는 바로 그 유전자가 여자로 하여금 남자를 좋아하게 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아이를 낳게 하므로 진화적인 이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태아가 자궁 안에서 호르몬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성적 지향에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형이 여러 명 있는 남자 아이의 경우 자궁에서 더 많은 남성호르몬에 노출되며 그 결과로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사망한 동성애자 및 이성애자들의 뇌 조직을 직접 채취해 조사한 결과 동성애자의 시상하부핵 INAH3의 부피는 이성애자에 비해 2분의 1이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으며 반대로 전교련이라는 부위는 이성애자들보다 더 컸다.

헬라어 ‘스티그마(stigma)’는 원래는 불에 달군 뒤 가축의 엉덩이에 찍어 소유자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쇠 인장을 말하는데, 이것이 고대사회들에서 노예나 반란자, 파렴치범 등 가장 천대받는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로 그들의 몸을 지지는 데 사용된 것에서 유래하여 사회적 낙인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교회용어사전>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에서 ‘스티그마’의 복수형인 ‘스티그마타(stigmata)’는 ‘성흔(聖痕)’, 즉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생긴 상처들을 나타낸다. 예수 자신도 기성 종교인들에게 신성을 모독하는 급진적 사상가로 낙인찍혀 십자가 처형을 당했는데, 이렇게 그의 몸에 새겨진 성흔은 인간의 진화 역사 내내 계속되었고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낙인들을 상징한다. 특히 성서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사회적 약자 계급은 과부, 고아, 나그네다. 나그네는 외지에서 온 이방인, 이민자,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의미할 수 있다.

특별히 기독교의 역사에서 종교인들이 행한 가장 끔찍한 죄악은 과부에 대해 행해졌다.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수만명을 희생시킨 마녀사냥의 역사에서 주된 공격 대상이 바로 과부였다. 기독교 교리가 만들어낸 원죄로 각인된 존재가 여성인 데다, 특히 과부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부에 대한 낙인은 과거 중세시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과부들은 ‘남편 잡아먹는 여자’라든가 ‘팔자가 세다’는 등의 말을 들어야 했다. 인도에서는 특히 교육을 받지 못한 빈곤층에서 여전히 종교적 관습에 따라 조혼이 계속되고 있는데, 어린 나이에 결혼한 여성들이 일찍 남편을 잃고 나면 불길한 존재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혀 자식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 활동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며, 특히 아이가 딸려 있을 경우 재혼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구가 필요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이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질병을 연상케 함으로써 ‘행동면역계’에 의한 혐오 반응을 자극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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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고프먼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로 평가받는 어빙 고프먼은 낙인을 일컬어 손상된 정체성이라고 했다. 척수성 근위축증이라는 장애로 인해 낙인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언어학자 얀 그루에는 <우리의 사이와 차이>에서 고프먼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변색되거나 파괴된 정체성, 손상되거나 썩어버린 정체성, 그 손상은 감염된 상처와 같아서 다른 부위로 번지며 부패와 부식을 초래한다.” 우리는 이들의 몸에 새겨진 이 감염된 상처를 혐오한다. 그것이 번지며 초래할 부패와 부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두려움과 달리 다행히도(!) 이 감염은 밖으로 퍼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며 속으로 썩어들어갈 뿐.

■최정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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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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