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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기자수첩] 금융 카르텔 깨자더니, 금감원의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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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금융감독원 현직 간부가 민간 금융회사로 이직한 전직 금감원 직원에게 검사·감독 정보를 유출한 혐의가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달 금융위원회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간부 A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금감원은 퇴직 직원 다수가 피감 기관인 금융회사로 이직하는 등 전관예우 관행이 뿌리 깊은 곳으로 꼽힌다. 5대 시중은행의 상임 감사위원 5명이 모두 금감원 출신인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역대 금감원장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진웅섭, 김용덕, 윤증현 전 원장은 각각 카카오뱅크, 신한라이프생명보험, KB국민카드에서 사외이사로 근무 중이다.

문제는 금감원 출신들이 금융회사의 ‘감사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 임직원들이 한때 동료, 선배가 임원으로 있는 금융회사를 상대로 엄정하고 객관적인 감독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과거 사례만 봐도 금감원 전관예우가 어떻게 악용됐는지 고스란히 나타난다. 2020년 라임펀드 사태 당시 금감원 직원 B씨가 라임자산운용 핵심 문건을 통째로 빼돌려 전임 금감원 팀장 C씨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B씨는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접대와 함께 수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아 큰 충격을 줬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태 때는 금감원 전직 직원 D씨가 부산저축은행 측으로부터 뒷돈을 받고 검사 관련 청탁을 해온 사실이 적발돼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부산저축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간 불법 대출과 분식회계 등이 가능했던 배경엔 금감원 출신 상임감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저축은행 문제는 상당한 부분이 전관예우가 이유가 됐다”고 말을 했을 정도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관예우금지법’이 확대 시행되며 금감원 직원은 퇴직일로부터 3년간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게 됐지만, 효력은 크지 않았다. 퇴직 후 직무와 무관한 직장에 재취업한 뒤 3년 후 금융회사로 옮기는 방식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사례만 늘었다. 여전히 이런 방법은 통용되고 있고, 전관예우로 인한 고질적인 병폐는 계속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 후 조직 체질 개선에 주력해 왔다. 기수 문화를 바꾸고자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주의에 기반한 인사를 여러 차례 단행했다. 정부의 ‘이권 카르텔 척결’ 기조에 맞춰 이 원장은 지난해 7월 금감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금감원 출신 금융사 임직원들과의 사적 접촉이나 금융회사 취업에 있어서도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한 치의 오해가 없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금감원 내부 정보 유출 의혹으로 이복현 원장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전관예우라는 악습의 고리를 끊지 못한 것이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검사·징계 권한을 갖고 있는 권력기관이다. 금융회사를 향해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하면서 스스로 내부통제를 하지 못하는 기관에 미래는 없다.

김보연 기자(kb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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