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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현장의 시각] 대한민국 뉴스페이스의 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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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이직하려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자들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7개월째를 맞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작년 9월 감사를 거쳐 대전지검에 항우연 연구자들을 발사체 기술유출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를 의뢰한 지 한 달 만에 압수수색을 실시하며 속도를 낼 것 같던 검찰 수사는 어찌된 일인지 정작 대부분의 수사를 마무리하고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과기정통부 감사관실도 수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감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대전지검도 과기정통부 감사관실도 언제쯤 결과가 나올 지를 묻는 질문에 묵묵부답이다.

수사는 처음부터 기술유출이라는 거창한 명목을 내세우고 시작했다. 하지만 곧 무리한 수사와 감사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항우연과 함께 누리호와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우연 소속 연구자들을 공개 채용한다고 한 상황에서 국가의 발사체 기술을 몰래 빼돌리려 했다는 ‘전제’ 자체가 우습다.

연구자들이 도대체 누구에게 기술을 넘기려고 했는지, 기술을 넘겨서 무슨 이득을 얻으려고 했는지 확인돼야 기술유출 범죄가 성립된다. 그런데 수사를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확인된 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대로면 우주항공청 설립을 두고 비판적인 입장이던 항우연을 겨냥한 표적 감사라는 국회의 지적이 맞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사와 감사가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수사 대상에 오른 연구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한국 발사체 개발을 주도한 핵심 인물들이 항우연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옮기지도 못한 채 반년 넘게 방치돼 있다. 나로호와 누리호를 개발한 발사체 전문가들이 등산과 낚시로 시간을 떼운다는 이야기에 한숨이 나온다. 점점 치열해지는 세계 발사체 시장에서 한국이 점차 기회를 잃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연구자들을 뽑으려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 뉴스페이스의 주춧돌이 될 회사다. 고도화 사업을 통해 앞으로 누리호를 세 차례 더 발사해야 하고, 정부가 2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개발하는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도 이끄는 임무를 맡고 있다. 차세대발사체는 한국의 달 탐사와 화성 탐사 시대를 열 발사체다.

하지만 한화는 국내 발사체 전문인력이 부족한 탓에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발사체 개발 노하우를 가진 항우연 출신 전문가의 힘이 절실한 상황에서 검찰 수사와 감사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스페이스X에는 그 어느 회사보다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이 많다. 스페이스X가 개발하는 초대형 발사체인 스타십 프로젝트의 총괄은 NASA의 유인 우주비행 부문 수장이던 캐시 루더스가 맡고 있다. NASA 직원이 스페이스X로 옮겼다고 감사를 받거나 스페이스X가 NASA의 눈밖에 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민간 기업이 도전적인 우주사업을 펼치는 뉴 스페이스 시대의 성공 요건 중 하나는 적극적인 인력 교류와 지원이다. 선도국에 비해 몇 십 년 늦게 출발선상에 선 대한민국 뉴스페이스가 성공하려면 그나마 공공 영역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민간 기업에 가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장려하지는 못할 망정 정부가 수사를 의뢰하고 검찰은 트집잡기식 수사로 태클을 걸고 있다. 누가 대한민국 뉴스페이스의 적(敵)인지 분명해 보인다.

이종현 과학팀장(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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