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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배달업계 ‘공짜 서비스 경쟁’ 찜찜한 뒷맛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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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쿠팡은 지난달 유료 멤버십인 와우 회원의 월 회비를 기존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멤버십 회비 변경은 2021년 12월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올린 이래 2년 4개월 만이다. [사진 = 연합뉴스]


‘배달비 무료’

음식 주문 배달 앱 2위 쿠팡이 최근 자사의 유료 멤버십 ‘와우’ 회원을 대상으로 꺼내든 카드다. 불경기와 인플레이션 속 주머니가 가벼워진 이용자들은 환호했다. 경쟁사인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도 재빠르게 비슷한 방식의 무료 배달을 내놓으며 업계의 선순환을 불러오는 듯했다.

그러나 묘수는 뒤에 등장했다. 쿠팡이 배달비 무료를 선언한 지 약 2주 만에 멤버십 가격 인상을 결정한 것. 인상률은 무려 58%. 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큰 폭의 인상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와우 회원이 약 1400만명임을 고려하면 쿠팡의 월 멤버십 수익은 기존 699억원에서 1105억원으로 매월 400억원 이상 늘어난다. 일단 무료 배달을 내세운 뒤 수익성을 이유로 총선이 끝나자마자 유료 멤버십 요금을 올린단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증권가 역시 와우 회비 인상에 수익이 크게 증가해 쿠팡의 흑자 기조가 정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탈이 없는 경우 회비 수익만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날텐데, 과거 사례를 보면 록인(lock-in, 잠금) 효과가 더 컸다는 것이다.

게다가 쿠팡이 무료 배달을 시행하면서 기존 ‘주문 금액의 10% 할인’ 혜택은 점차 없애는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쿠팡 공지에 따르면 매 주문 최대 10% 할인 혜택을 받아온 와우 회원은 묶음 배달 시 무료 배달로 자동 변경되며, 무료 배달 대신 10% 할인을 원하면 다음달까지 1회에 한해 변경 신청을 할 수 있다.

이후부터는 10% 할인을 선택한 와우 회원은 무료 배달로 언제든 변경할 수 있지만, 앞서 무료 배달을 선택한 와우 회원은 기존 10% 할인 혜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쿠팡으로서는 무료 배달을 선택한 회원을 확보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바닥에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무료 배달 정책으로 적잖은 비용이 투입되긴 하겠지만 결국 유료 멤버십 인상과 10% 할인 프로모션 종료를 통해 쿠팡은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결정이 과거의 사례를 봤을 때 시장에 어떠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2019년 5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배달통 등 업계 1~3위가 점유율 99%를 차지하던 배달 시장에 쿠팡은 ‘1주문 1배달’을 외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배달기사가 여러 건의 주문을 한 번에 받아 차례로 배달하던 상황에서 ‘한집 배달’이라는 쿠팡의 묘수는 제대로 빛을 발해 코로나19 팬데믹 속 급성장의 기반이 됐다.

그러나 얼마 뒤 이는 이용자와 배달기사, 자영업자 모두에게 독배가 됐다. 배달기사 확보를 위한 플랫폼간 출혈 경쟁이 심해지면서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배달비마저 오르게 된 탓이다.

코로나가 끝난 엔데믹에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기본 배달료는 6000원, 여기에 중개 수수료, 부가세, 거리 할증에 따른 추가 요금까지 별도로 붙었고, 높은 배달비에 부담을 느낀 식당은 음식 값과 배달료를 올리면서 결국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높아진 배달료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의 주문이 줄면서 배달기사의 수익도 감소해 이후 기사들의 이탈도 증가했다. 배달료와 음식 값 인상, 시장 악화, 기사 이탈이 줄줄이 이뤄진 셈이다.

쿠팡은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보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4조2901억원에 달한다. 이번 멤버십 가격 인상 결정에 주가 역시 하루만에 12% 가까이 뛰었다. 소비자의 선택과 지지를 받아온 만큼 시장 주도 사업자로서의 책무도 생각해 봐야 한다.

쿠팡은 최근 3조원을 들여 전국배송에 나선다고 밝혔다. 쇼핑에서 소외된 도서산간 소비자에겐 희소식이다. 쿠팡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다시 분통 터트릴 일을 해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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