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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원화·엔화 평가절하 우려”…美 재무 수장도 사실상 ‘구두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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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첫째)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재무부에서 열린 '제1차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최 부총리,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 기재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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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일본 재무장관이 처음 만나 최근 원화·엔화 가치 하락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공유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닌 미국까지 나서 사실상 ‘구두(口頭) 개입’한 셈이라 주목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17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 DC 미국 재무부에서 만나 이런 내용의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3국 장관은 회의 직후 “최근 원화와 엔화의 급격한 평가 절하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심각한 우려를 인지했다(acknowledging serious concerns)”며 “우리는 기존 주요 20개국(G20)의 약속에 따라 외환시장 진전 상황에 대해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16일 워싱턴에서 만난 한·일 재무장관이 “최근 양국 통화의 가치 하락(절하)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 급격한 외환 시장 변동에 대응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구두 개입한 연장 선상이다. 환율과 관련한 언급은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합의에도 없던 내용이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이례적으로 함께 메시지를 낸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까지 나서 외환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라서다. 환율 시장에 정부 개입을 꺼리는 미국 정부까지 나선 만큼 구두 개입만큼이나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급격한 원화 약세를 겪는 한국, 구두 개입 효과가 떨어진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강달러 충격에 대한 공감을 얻어낸 만큼 외환 시장에서 달러 매수세를 식히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미국의 용인하에 달러 매도로 환율을 끌어내리는 조치가 수월해졌다”며 “한·일 양국이 같은 시점에 달러를 매도할 경우 시장 개입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환율은 당국자 발언(구두 개입)에 특히 민감하다. 외환 거래와 관련한 통계를 정부가 가장 먼저, 정확하게 얻기 때문이다. 외화 거래량도 정부 비중이 절대적이다. 잦은 구두 개입이 국가 간 환율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정부가 환율과 관련한 언급을 자제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정부의 환율 개입을 둘러싼 국제 기류가 다소 바뀌었다. 이번 공동 선언문처럼 세계 각국이 외환 시장에 말로, 혹은 달러를 사고파는 식으로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 잦아졌지만 미국이 환율 조작으로 문제 삼지 않는 모양새다.

3국은 또 공동 선언문에서 “공급망 취약성과 핵심 부문에서 경제적 강압과 과잉생산 등 다른 국가의 비(非)시장적 경제 관행이 경제에 미칠 수 있는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과잉 생산 등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대해 3국이 공동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3국은 이날 회의에서 논의한 사항을 추진하기 위한 실무급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은 공동 선언문에서 빠졌다. 통화 스와프는 두 나라가 정한 환율로 자국 통화를 일정 시점에 교환하는 계약이다. 시장 불안을 사전에 막아 ‘외환 안전판’으로 불린다. 국내 외화 보유액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만큼 미국이 한국과 통화 스와프를 맺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양국은 2008~2010년, 2020~2021년 두 차례에 걸쳐 통화 스와프를 맺은 뒤 종료했다. 일본과는 지난해 12월 100억 달러 규모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8일 “급격한 외화 자금시장 악화에 대비해 충분한 크레딧(신용) 라인을 확보하고 비상 조달계획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외환·원자재 전문가, 금융 지주 최고위기관리자(CRO)와 함께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주식·채권·단기자금시장 및 외화 유출입 모니터링 강화 ▶해외 사무소 핫라인 가동 및 24시간 대응체계 구축 ▶유관기관 체계적 협조 방안 등을 논의했다.

김기환·김남준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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