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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임원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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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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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기업 사주는 관리자급 직원이 마음에 안 들면 ‘임원’으로 승진시킨 뒤 얼마 안 가 해고하는 꼼수를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2000만 월급쟁이의 꿈인 ‘임원’ 자리가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임시 직원’일 수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 대졸 신입 사원 중 0.6%만 임원 타이틀을 단다. 1000명 중 6명이란 확률은 수능 응시자 중 의대 합격자 비율과 비슷하다. 수능은 3년 농사지만, 신입 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는 평균 21년이 걸린다.

▶임원이 되면 연봉이 2~3배 뛰고, 출장 갈 때 비즈니스석을 타고 비싼 부부 건강검진도 회사 비용으로 받는 등 신분이 달라진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요즘은 일반 직원들도 잘 하지 않는 새벽 출근에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한다. 주 52 시간 근무는 언감생심, ‘월화수목금금금’을 각오해야 한다. 첫 임원 승진 나이는 49세, 퇴임 나이는 54세로 평균 재직 기간이 5년이지만, 신규 임원의 30%는 2년 이내에 짐을 싼다.

▶임원이 엄청난 연봉을 받는 ‘샐러리맨 갑부’ 시대를 연 사람은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이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초일류 인재를 데려와 사장보다 연봉을 더 주라”고 인사팀을 닦달했다. 이 회장의 임직원 연봉 대폭 인상 지시에 인사팀장이 30% 인상안을 들고 갔다가 “너부터 집에 가라”는 면박을 당했다. 그 결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연봉이 250억원대까지 치솟았다. 삼성발 임원 연봉 인상이 타 기업으로 확산됐다.

▶외국에서도 임원에겐 회사를 위해 몸과 영혼을 갈아 넣을 것을 요구한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세상을 바꾸려면 주 8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 “성공하기 위해선 극도의 하드코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자 한 여성 임원은 사무실 바닥에서 안대를 하고 침낭에서 자는 모습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아첨꾼”이란 비아냥도 들었지만 머스크는 중용했다.

▶삼성그룹이 전 계열사 임원들에게 주 6일 근무를 지시했다. AI 반도체 경쟁에서 뒤지는 등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이 기사엔 “글로벌 기업답지 않은 구태의연한 대응”라는 댓글도 있지만 “조직이 위기일 때 시대 흐름 운운하는 자는 임원 자격이 없다”는 등 지지 의견이 훨씬 많았다. SK그룹도 20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하는 등 비상 경영에 나섰다. 한 임원에게 소감을 묻자 “주 7일 근무도 좋으니 오래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모든 임원의 바람이지 않을까.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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