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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투데이 窓]의료정책, 치료에서 케어 중심 전환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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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길을 지나가면서 어느 날 보니 새로운 요양병원이 생겼는데 전에는 결혼식장 건물이었다. 요즘 새로 생기는 병원은 대부분 요양병원이어서 노령화를 새삼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치료받다 소생 가능성이 없어 임종을 해야 할 때는 퇴원하고 집으로 모셨다. 문화적으로 집 밖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객사라 해서 안 좋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적 현상 때문에 불과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병원 인턴이 하는 중요한 일의 하나가 소생 가능성이 없는 분을 집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상태가 안 좋아 운명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 집에서 운명하시게 했다. 하지만 집에서 임종하거나 특히 집에서 초상을 치르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 됐다.

요즘은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운명하는 분도 점차 늘어나는데 집안에 연로한 어른이 계시는 경우 좋은 요양병원을 미리 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도 막연히 병원이라고 하면 병을 치료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한다. 이제 병원의 역할은 사람이 태어나고 아플 때 치료받고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 생애 전주기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이나 의료기술 사회시스템이 이런 변화를 잘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다.

현대과학과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의료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특히 의료장비의 발전은 컴퓨터단층촬영, 자기공명영상촬영, 양전자방출단층촬영 등의 진단장비나 치료기술에 집중됐다. 국책연구비 역시 거의 대부분 치료기술에 집중된다. 물론 혁신적인 글로벌 신약개발의 성공은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지만 이런 신의료기술 개발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데 전부는 아니다. 의료서비스는 치료(cure)와 케어(care)가 모두 중요하고 신의료기술의 연구·개발 역시 균형이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 오히려 의료정책은 진단과 치료 중심에서 케어 중심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치료의 중심은 3차 의료기관에 집중되고 노령화에 따른 케어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서는 요양병원이 새롭게 생겨났다. 한편 치료 중심의 입원 가능한 중소병원은 점점 없어져 국민들의 선택지가 줄어들어 문제다. 거의 대부분 보험급여가 되기 때문에 중소병원들은 점차 외면당하고 3차 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은 필연적으로 의료비 상승을 가져온다. 반면 신규 중소병원은 주로 요양병원으로 설립되는데 이런 병원에서 꼭 필요한 의료장비 기술 등의 연구·개발 필요성이 증가한다.

병원은 인간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업종이고 인건비는 비싸기 때문에 병원경영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의 하나다. 따라서 현재 가장 필요한 의료장비 분야는 인간을 케어할 수 있는 로봇의 개발이라 할 수 있다. 병원 시스템도 사물인터넷과 로봇의 활용을 통해 인간의 노동력을 최소화해야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지될 수 있다. 이런 기술은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나 보호자의 의료비용을 줄이는 데도 꼭 필요하다. 케어가 필요한 환자가 입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보호자들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궁금함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정보가 보호자에게도 공유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실시간 영상통화나 온라인 면회가 가능한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도 변화해야 한다. 법적 기준이 정비되고 그 범위 내에서 각 병원이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의료서비스를 개발·공급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의료인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하고 케어를 제공하는 의료인들의 전문성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육 및 인증시스템이 정비돼야 한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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