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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사전청약뒤 전세금 뺐는데” 71%가 사업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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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8000채… LH, 한두달前 통보

주거계획 틀어진 당첨자들 발동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공공분양 사전청약 단지 10곳 중 7곳은 본청약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1만8000채 규모다. 특히 사업자인 LH가 본청약 예정일 한두 달 전에야 ‘지연 통보’를 하면서 사전청약 당첨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동아일보가 LH의 입주자모집공고문을 분석한 결과 올해 말까지 본청약이 예정된 45개 사전청약 단지 중 32개(71.1%)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4년까지 일정이 미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연 물량만 1만7913채로, 미니 신도시 1곳에 맞먹는다. 분석 대상은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공공분양 사전청약을 진행한 90개 단지다.

사전청약은 본청약 1∼2년 전에 청약을 진행하는 제도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보금자리주택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됐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7월 ‘패닉바잉’(공황구매) 등으로 집값이 급등하자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매수세를 묶고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이 제도를 부활시켰다.

본청약이 미뤄지고 있는 단지의 평균 지연 기간은 1년 2개월로 조사됐다. LH가 지연 예정일을 공개한 단지만 집계한 수치다. 올해 1∼12월 본청약이 예정된 18개 단지 중 10곳은 올해 공급계획에서 아예 빠져 평균치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 지연 기간은 더 길다는 뜻이다.

한 사전청약 당첨자는 “본청약 때 계약금을 넣어야 해 전세금을 빼서 돈을 마련했는데 LH가 본청약을 두 달도 안 남기고 사유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 공문으로 일방 통보했다”고 토로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사전청약에 대한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값을 잡기 위해 당시 정부가 무리하게 도입한 결과”라며 “수요자들이 이사, 자금계획을 짤 수 있도록 사업 진행 상황, 지연 사유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H, 본청약 두달 전에야 지연 통보” 당첨자들 이자 부담 분통


공공분양 사전청약 71% 사업지연
감리업체 교체, 7개월 뒤에 알려… 주민들 반대에도 청약 받기도
일부 청약자들 “당첨 포기” 고심
국토부, 민원 쏟아지자 전수조사


2021년 12월 경기 구리갈매역세권 A1블록 사전청약에 당첨된 김모 씨(39). 올해 초 당첨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9월로 예정된 본청약이 연기됐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다. 부랴부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홈페이지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이주 지연으로 본청약 일정 지연이 예상된다’라는 답변만 달렸다.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설명도 없었다. 김 씨는 “본청약 계약금(5000만 원)을 내려고 전세자금 대출을 9000만 원이 아닌 1억4000만 원을 받았다”며 “분양과 입주가 지연되면 그만큼 이자를 더 내야 하는데 지연 사유와 기간이라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전청약에 나섰던 LH 공공분양 단지들의 본청약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특히 LH가 예정일이 임박해서야 지연 사실을 통보해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본청약에 맞춰 계약금, 중도금 등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지연 통보에 ‘주거 계획’ 자체를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다.

● “본청약 두 달 전에야 지연 통보” 불만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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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청약 당첨자들은 LH가 본청약 지연 사실을 제때 밝히지 않고 기계적으로 1∼2개월 전에 통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LH는 실제 사내 지침에 따라 본청약 예정일 약 두 달 전에 지연 통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보상 문제가 삐그덕거리거나 감리 업체 선정이 늦어지는 등 본청약 지연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때도 통보를 미루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해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이후 ‘전관’ 감리 업체를 교체하며 사업이 지연됐는데 7개월이 지나서야 알린 경우도 있었다. 경기 의왕월암지구 A1블록 사전청약 당첨자 김모 씨(37)는 “본청약이 5월 예정이었는데 올해 3월 14일 본청약이 지연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지연 사유에 ‘건설사업관리용역사 선정 지연’이라고만 적혀 있어 처음 봤을 때는 왜 지연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해당 지구는 지난해 5월 본청약 예정이었다가 올해 5월로 한 차례 연기된 이후 다시 9월로 본청약이 재차 연기됐다.

본청약을 기다리다가 지쳐 당첨자 지위를 포기하려는 이들도 나온다. 경기 월암 A3블록 사전청약 당첨자 최모 씨(38)는 “사전청약 당시 안내받은 입주일이 2026년 1월이었는데 지금은 2027년이 될지, 2028년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아이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고려해 청약했는데 계획이 다 틀어져 포기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이 단지의 다른 사전청약 당첨자 서모 씨(39)는 “혼인신고 7년까지만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신청할 수 있는데 본청약을 기다리느라 3년을 그냥 보냈다”며 허탈해했다.

● “예고됐던 문제” 지적…국토부 전수조사 착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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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제때 본청약을 할 수 없는 물량을 사전청약으로 공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민 이주 반대와 매립폐기물 발생으로 본청약이 지난해 9월에서 내년으로 미뤄진 경기 고양장항S1블록의 한 사전청약 당첨자는 “주민 반대가 있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고 사전청약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3년 본청약 지연 통보를 받은 경기 군포 대야미 A2 사전청약 당첨자는 “착공이 지연되면 분양가도 오르고 입주 시기도 밀릴 텐데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이미 예고됐던 혼란이라는 비판도 있다. 2009년 보금자리주택에 대해 사전청약(당시에는 사전예약제)을 실시했을 때도 사업 지연으로 당첨자들이 제때 입주하지 못했었다. 이후 사실상 폐기됐던 제도가 2021년 7월 집값 대책으로 부활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사전청약에서 본청약까지 걸리는 기간을 2년으로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LH와 국토교통부는 최근에야 사전청약 단지 전수조사에 나섰다. LH 관계자는 “사업 지연 통보 시기를 앞당기고, 지연 사유와 계획 등을 사전청약 당첨자들에게 제때 공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전청약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급 규모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최대한 예측 가능한 물량으로 선별해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사전청약에서는 사업 지연 우려가 없는 지역을 제대로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연된다면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며 “이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면 폐지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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