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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애물단지 현수막도 가치소비…재활용 한정판 가방 변신 [지구on난항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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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현수막 연간 약 125만건...정부·지자체 관심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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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녹색발전소 제작실에 장바구니를 만들기 위한 현수막 천이 쌓여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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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현수막 공해 문제는 4·10총선에서도 어김없이 지적됐다. 땅에 묻어도 썩지 않고, 소각하면 다이옥신과 온실가스 등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탓에 늘 사용량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론 줄지 않았다. 선거 현수막 관련 규정이 완화되고 옥외광고물법으로 철거되는 불법 현수막은 늘어나면서다. 지속 가능한 현수막 재활용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버려진 현수막이 새롭게 태어나는 현장을 찾아갔다.

형형색색의 현수막들이 거리를 뒤덮었던 4·10 총선이 끝난 지 일주일만인 17일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폐현수막 업사이클링기업 ‘녹색발전소’를 찾았다. 오전 9시 제작실에선 장바구니와 마대를 만드는 재봉틀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한 작업자 뒤로 비추는 창밖 햇살은 현수막으로 만든 커튼이 가리고 있었다. 두 명의 작업자 옆으로 쌓인 현수막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칠 때마다 장바구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현수막 1장은 주로 장바구니로 쓰이는 에코백 4~5개(또는 마대 2자루)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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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이 사용 중인 녹색발전소 제작 학습지 가방. 사진=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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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이 장바구니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수막의 품질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돼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선거 현수막처럼 가장 품질이 좋지 않은 현수막은 자동차 정비 공장에 쓰레기를 담는 마대로, 중간 품질의 현수막은 일반 마대, 모래주머니 등으로, 가장 품질이 좋은 현수막은 장바구니, 학원 가방, 어린이 활동 도구 등으로 만들어진다. 날이 갈수록 현수막 소재 품질이 좋아져 에코백 품질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나오는 유명 업체 홍보 현수막은 실크 소재라고 한다. 녹색발전소는 민간 연구원을 통해 폐현수막 원단의 안전성을 확인, 유해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확인도 받았다.

현수막 해제와 분류가 다 끝난 현수막 원단은 가방 크기로 재단해 두 장의 인쇄 면이 맞닿게 겹쳐 재봉한다. 현수막으로 만든 손잡이 끈을 가방에 박음질하면 에코백 완성. 녹색발전소에 따르면 무게 20kg 짐을 담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완성된 에코백은 잘 담아 의뢰한 단체 등에 전달된다. 현수막 상품의 주 소비자는 정부부처, 민간 기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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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발전소에 쌓인 현수막을 바라보는 김순철 대표. 사진=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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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제작실 옆 작업장 한편엔 경남 통영시에서 보낸 친환경 소재 현수막이 도착했다. 박스를 가득 채운 현수막은 장바구니로 변신할 예정이다. 통영시 관계자는 “플라스틱 현수막으로 인한 환경오염, 탄소배출 우려가 크다. 최대한 다시 쓸 수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장바구니를 의뢰했다”며 “정확히 정해지진 않았지만, 전통시장이나 관광지, 행사장 등에서 시민들과 나누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수막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한 개인 구매도 늘었다고 한다.

작업장에 쌓인 현수막만 5000~6000장 정도다. 분양업체 옥외광고물부터 지자체 행사 현수막까지 다양하다. 서울 여성가족재단이 기증한 현수막, 잘못 인쇄된 불량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창고 다른 한 편엔 현수막을 지지하던 나무 막대기가 쌓여 있었다. 나무 막대기는 다시 현수막 제조 공장으로 돌아가 재사용된다. 김순철 녹색발전소 대표가 나무 막대기 1개에 숫자를 적어 얼마나 재사용되는지 실험해보니 10번가량 녹색발전소로 돌아왔다고 한다. 나무 막대기가 부서져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재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노끈은 모아 폐합성수지 공장으로 보내 플라스틱 제품 원료로 재활용한다. 현수막 한 장에 버릴 것이 하나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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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녹색발전소 작업자가 현수막 장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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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정당과 후보가 현수막을 쏟아내는 선거철이면 특히 바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정당 현수막 현황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지난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행정안전부에 신고된 현수막은 약 630만건이다. 연평균 약 125만건의 현수막이 버려지면서 환경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재활용되는 것은 4장 중 1장(20~30%)에 불과하다. 4장 중 3장은 소각되는 셈이다.

전국 곳곳에서 나오는 현수막을 모두 재활용하고 싶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버려지는 현수막이 너무 많은 이유도 있지만, 물에 젖거나 오염이 심한 현수막은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해 소각해야 한다.

현수막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대표는 “서울 일부 자치구는 창고에 수거한 현수막을 보관하고 있어 재활용이 용이하다. 그런 창고가 없는 곳은 사실상 쓰레기통행”이라며 “지자체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현수막을 잘 재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컨대 지자체 쓰레기를 모으는 대형 마대(톤마대), 환경정화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비닐봉지 대신 현수막 재활용 마대를 이용하면 버려지는 현수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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