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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그렇습니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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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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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듣고 있어
그녀가 그 사람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라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입술을 조금씩 움직여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그 사람은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다시 그 이야기를 했고 한참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또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했다

다른 말을 했어야 한다고 그녀는 여기는 듯했다
겨우 그런 말이 그 사람과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 듯했다
(하략)

―김소연(1967∼)


다 옮겨 적지 못한 시의 다음 구절이 궁금해서라도, 당신이 김소연의 시집을 펼쳐보길 바란다. 다 전하지 못한 다른 작품이 궁금해서라도, 당신이 김소연의 시집들을 펼쳐보길 바란다. 장담하건대 김소연의 어떤 작품들에서 당신은 오래 머물 것이고, 여러 작품 속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특히 그의 시는 나 자신이 햇빛 아래 이슬처럼 증발할 것 같을 때 손이 간다. 내 영혼에 물기가 맺혔다 말랐는데 그 자국이 얼룩처럼 남았을 때 읽으면 좋다. 사람을 스치고 간 말, 기억, 풍경, 마음은 분명 사라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남아 있다.

상처는 순간이지만 아픔은 오래간다. 사건은 순간이지만 잔상은 오래간다. 우리는 잊은 듯 기억하고, 기억하는 듯 잊어간다. 그 미묘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할 때 김소연의 시를 읽는다. 나도 모르는 나의 희미함을 김소연은 “응, 듣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들을 수 없게 된 것을 대신 들어준다는 사실이 눈물이 날 듯 커다란 위로가 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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