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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도경의 플레e] 중국의 게임·e스포츠 용어, 국제 표준될 날 머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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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보좌관 칼럼

파이낸셜뉴스

이상헌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이도경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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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e스포츠(이스포츠) 표준화. 오늘의 주제다. 언뜻 보면 썩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갖춘 이스포츠 종목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통일시킨다니, 이상해보일 법 하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일화를 소개드린다.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 이스포츠 국가대표팀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이스포츠협회 직원들이 사전답사를 갔다. 안락한 숙소 확보, 대회 경기장과의 동선, 주변 환경 등 다방면을 체크했다. 문제는 연습 및 경기 환경이었다. 우리나라와 상이했다. 당장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는 모니터부터 말썽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모니터와 모델은 물론 사이즈까지 다 달랐던 것이다. 다행히 이스포츠협회 직원 분들의 고군분투로 모니터를 구해와 문제를 해결했다고는 한다.

만일 그 모니터를 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선수들은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세한 차이에도 경기력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스포츠 국제표준이 정립돼 있었다면 어땠을까. 애당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들이 국제 표준 규격의 모니터로 연습을 하고, 현장에도 그 모니터가 배치돼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이스포츠에도 표준화가 필요하다. 갈수록 글로벌화 되고 있는 이스포츠 환경에선 그 필요성이 더 커진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무려 총상금 832억원의 이스포츠 대회를 개최하는 시대다.

이스포츠 표준화의 대상은 장비에 그치지 않는다. 대회규칙·선수선발·중계표준 등 국제대회 운영규정, 무대·방송·개인장비 등 경기장 시설·장비 기준, 선수 트레이닝·교육과정 개발 및 보급 등 인력양성 시스템까지 아우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이스포츠 표준화를 주도해야 할 이유다. 역사상으로도 기준을 만든 국가가 시대를 주름잡았다. 국제통화가 그렇고, 도량형이 그러했다. 우리나라가 이스포츠 표준화에 성공한다면, 앞으로도 우리가 국제 이스포츠 무대를 이끌 것이다. 어차피 우리나라가 규모와 자본 면에서 미국이나 중국 이스포츠 시장을 앞지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시스템에서라도 우리가 앞서나가야 하지 않겠나.

안타까운 점은 우리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 지난 2020년 10월 23일 필자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국제 이스포츠 표준안과 관련해 진행 경과 및 향후 계획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문체부는 이스포츠 여러 분야에서 표준안 마련을 계획하고 있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리고 ‘한중일 이스포츠 대회’를 기점으로 표준안을 적용하고 확산시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현재,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답답하다. 우리가 멈춰 있는 동안 중국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지난 1월 31일, 중국은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중국 게임용어표준 제안서’를 제출했다. 중국은 이 제안서에 ‘게임 및 이스포츠’, ‘이용자’, ‘이스포츠 방송’ 관련 정의를 망라해 담고 있다. 제출된 제안서는 ISO내 소위원회인 ‘TC83(Sports and other recreational facilities and equipment)'에서 심사하게 된다. TC83에는 3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각 국가의 국가표준기구(우리나라는 ‘국가기술표준원’)가 제안서 제출일로부터 12주간 심사를 진행해 찬성이나 반대 혹은 기권 투표를 한다.

이 결과에 따라 기권 표를 제외한 참여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제안서가 채택된다. 이후 TC83 소속 각 국가별 국가표준기구에 등록된 전문가들로부터 채택된 제안서의 내용에 대해 심층논의를 거치게 된다. 이 논의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될 수는 있으나 채택된 결정 자체가 번복되진 않는다. 참고로 투표 종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달 25일이 기한이다.

사실 중국의 시도는 이번 제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4월 같은 내용으로 이미 제출된 바 있다. 당시에는 여러 국제 협·단체 및 국가들이 대응해 무산됐으나 중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획을 정비해 올해 재도전했다.

지난번과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입장에선 최대한 많은 반대표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2021년과는 다르게 입장을 바꾼 국가가 상당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공들여 설득해왔고,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친 중국 성향의 게임사가 이 문제 관련 찬성 의견 개진을 위해 우리나라의 국가기술표준원에 직접 연락해 전문가 등록을 신청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중국에 반해 우리 정부는 어떤가. 이대로 가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우려가 가득하다. 더 이상 ‘이스포츠 종주국’이라는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만시지탄이나마 대응에 서둘러야 한다. 중국의 게임용어가 국제 표준으로 쓰이게 방관해선 안 된다.

정리/

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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