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당일고지 교수형 정당한가’…법적 시비 따지는 日 사형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현행 사형 집행 방식은 헌법에 부합하는가.’

‘사형집행국’ 일본의 사형제 관련 재판에서 제기된 의문이다. 사형 집행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 시작된 재판은 사형제 자체의 정당성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2010년 언론에 공개된 도쿄구치소 사형 집행실. 아사히신문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 오사카지방재판소는 사형집행방식을 둘러싼 판단 하나를 내놨다. 당일에 사형 집행 사실을 알리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사형수 2명은 헌법이 보장한 인격권을 근거로 ‘죽음의 시기를 알 권리’를 주장했다.

재판소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형 확정자에게 집행시기를 사전에 알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또 “원고들(사형수 2명)은 당일 고지를 감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못박았다. 사전에 알려 사형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사형수 본인의 심적인 안정, 원활한 집행의 관점에서 일정한 합리성이 있다”고도 판단했다. 원고 측이 항소 방침을 밝혀 재판은 상급심에 다시 진행된다.

오사카지방재판소에는 사형제와 관련된 재판 두 건이 더 진행 중이다.

하나는 현행 사형 방식이 교수형이 헌법이 금지한 ‘잔혹한 형벌’에 해당하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한국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는 같은 문제에 대해 1955년 합헌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하지만 재판을 제기한 측은 “어떤 시대에는 잔혹한 형벌이 아닌 것이 후대에는 반대로 판단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잔혹하지 않은 방법’을 모색해 약물주사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시대가 변했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는 ‘재심 청구 중 이뤄지는 집행’에 관한 것이다. “사형은 집행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이 재판은 오심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형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다. 지난해 3월 재심 결정이 나온 하카마타 이와오씨 사례는 “사형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카마타씨는 1966년 일가족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돼 48년이나 복역했으나 수사 당시 증거 조작 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재심 결정이 나왔다.

일본은 거의 해마다 사형집행을 해왔다. 2008년 도쿄 아키하바라역 부근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으로 복역 중이던 사형수 1명에 대한 집행이 2022년 7월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집행이 없었던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1945∼2022년 718건의 사형을 집행했고 1960년대까지는 매년 20∼30건에 이를 정도였다. 지난달 기준 사형수는 109명이다.

일본의 이런 사정은 국제적인 추세에 배치된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세계 199개 국가·지역 중 144개국이 사형제를 폐지 혹은 정지하고 있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사형제를 유지 중인 국가는 일본과 미국, 한국 뿐이다. 30년 가까이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는 한국은 사실상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일본의 사형 방식, 사형제에 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보는 이들은 소송 제기 뿐만 아니라 여론 환기를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국회의원, 변호사, 전 검사총장(검찰총장), 범죄피해자 유족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 결성됐다. 아사히는 “한달에 한번 모임을 갖고 사형에 대한 해외 각국의 인식이나 사형이 범죄 억제에 도움이 되는 지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가을에는 이와 관련된 제안서를 정부에 낼 것”이라고 전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