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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대만에 반도체투자 몰빵 위험"...지진 후폭풍, 대체지 뜨는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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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한 직원이 반도체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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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또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대만해협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과 미·중이 벌이는 정치·군사 갈등에 더해 지난 3일 대만 동부 화롄(花蓮)에서 25년 만에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정학 리스크에 천재지변까지 더해지며 빅테크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 92% 대만 생산…두려운 빅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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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대만 화롄현 화롄시에 지난 3일 발생한 규모 7.2 지진으로 기울어진 톈왕싱 빌딩의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화롄=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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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걱정은 첨단 반도체 생산을 사실상 대만에 ‘몰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대만 TSMC는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의 약 70%,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92%를 담당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군사적 충돌이나 지진 등으로 대만 내 반도체 생산이 멈춘다면 글로벌 공급망은 사실상 붕괴된다.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는 “이번 지진은 서방에 첨단 반도체 제조가 지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불안한 대만에 얼마나 집중돼 있는지를 상기시켜줬다”며 “지진이 나든 안 나든 대만 이외의 곳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건 세계적 화두가 됐다”고 전했다.



인텔·AMD·인피니온까지 말레이시아행



최근에 뜨는 ‘탈(脫)대만’ 후보지는 동남아시아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레거시(범용) 반도체 공급처인 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서 반도체 설비투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22년 이후 미 빅테크 기업은 대만 공급업체에 대만 이외 지역에서 생산 능력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특히 HP와 델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특정해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동남아에선 글로벌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 시설 확충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인텔은 2021년 2월 말레이시아에 70억 달러(약 9조40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을 짓고 올해부터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독일 반도체기업 인피니온은 2022년 7월 말레이시아 쿨림에 3번째 웨이퍼 제조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고, AMD·브로드컴 등도 말레이시아 페낭을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여기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파운드리 회사는 싱가포르 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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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싱가포르에 위치한 미국 반도체 회사 글로벌파운드리의 공장에서 한 직원이 작업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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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의 관심을 받고 있다. 퀄컴과 애플에 칩을 공급하는 파운드리 점유율 3위 미국 글로벌파운드리는 40억달러(약 5조원)를 투자해 지은 싱가포르 공장을 지난해 9월부터 가동 중이다. 점유율 4위인 대만 UMC도 싱가포르에 새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닛케이아시아는 “TSMC 자회사인 뱅가드반도체국제그룹(VIS)이 20억달러(약 2조6760억원)를 들여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을 싱가포르에 건설하는 걸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마이크론, 유럽 시스템반도체 기업 STM 등도 싱가포르에 공장을 갖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태국 등도 차세대 생산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베트남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팜민찐 베트남 총리에게 “베트남을 엔비디아의 제2의 고향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베트남은 2030년까지 첫 팹(반도체 제조 공장) 건설을 국가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달 동남아시아 국가를 순방하면서 “반도체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필리핀·태국 등에 미국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값싼 숙련 노동자에 희토류도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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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동남아의 강점은 낮은 인건비의 숙련 노동력이다. 특히 후공정(백엔드) 사업으로 불리는 조립·패키징·테스트(APT)가 전문이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전 세계 APT 상위 10대 기업 중 6곳이 대만 회사”라며 “광범위한 APT 생산 네트워크를 보유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 미국의 대만 의존을 줄일 열쇠”라고 평가했다. 반도체 관련 희토류 광물이 많이 매장돼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서방뿐 아니라 중국 기업도 생산지를 동남아로 옮기고 있다. 제품 최종 조립을 동남아에서 해 미국의 반도체 규제를 피하려는 심산이다.



미·일·인도도 대만 자리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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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위치한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방문해 팻 갤싱어(바이든 대통령 왼쪽) 인텔 CEO의 설명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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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외에 미국과 인도·일본 등도 반도체 생산 능력 확보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에 따라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인텔(85억 달러)과 TSMC(66억 달러), 삼성전자(64억 달러)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인도는 지난달 반도체 공장 3곳의 기공식을 동시에 열었다. 총 투자 규모만 150억 달러(약 20조원)가 넘는다. 마이크론도 지난해 8월부터 구자라트주에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에선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이 지난 2월 문을 열었다.



첨단 반도체에선 대만 독보적…대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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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대만 타이난에 위치한 TSMC 반도체 공장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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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기간 대만의 자리를 대체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남아와 인도 등에 늘어나는 반도체 공장은 대부분 APT나 레거시 칩 제조에 몰려있다. ㎚ 단위의 고성능 반도체를 만드는 부가가치 높은 선공정(프론트엔드) 영역은 여전히 대만이 장악하고 있다. 대만처럼 최첨단 반도체를 안정적 수율(收率·생산품 중 정상 제품의 비율)’로 제조하고, 이에 필요한 고급 인력과 최신식 공장을 갖춘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애플 등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대만 컴팔의 한 임원은 FT에 “대만은 칩, 구성품, 인쇄 회로 기판(PCB), 케이스, 렌즈, 조립품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며 “사람들은 공급망에서 대만의 위치를 과소평가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등도 섣불리 대만을 버릴 수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일본에서 진행 중인 TSMC 생산시설 확장 프로젝트는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마이크론 등은 여전히 대만에서 주요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그나마 대만과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대만에 집중된) 메모리와 파운드리 공급망 다변화의 최적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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