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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반려묘 88마리의 죽음 ‘볼드모트 사료’ 공포 확산...반려동물 사료 안전성 논란 반복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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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증과 신경·근육병증 제보 236마리 중 폐사 줄이어

당국, 원인 조사 중…동물단체 “사료 이외는 공통점 없어”

작년 AI바이러스 검출…“반려동물용 사료 인증제도 시급”

경향신문

이른바 ‘볼드모트 사료’ 리스트에 오른 사료 중 하나를 일주일 가량 섭취한 후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B씨(33)의 고양이. B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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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키우던 반려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과 신경·근육병증을 앓다 폐사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88건 확인됐다. 피해 고양이들은 특정 사료를 섭취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부실한 사료 검증 및 관리 체계가 반려인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일 기준 동물보호단체 라이프가 접수한 반려묘 피해 사례는 총 236마리로 이 중 88마리가 죽었다. 이 고양이들은 모두 특정 제조원에서 2024년 1~4월 만든 사료를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전국적으로 고양이의 연령이나 품종과 무관한 피해가 나타났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공통점은 사료 이외는 없다”고 밝혔다.

문제의 제조원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한 사료는 약 20종으로 알려져 있다. 반려인들 사이에서는 이 사료를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에 빗대 ‘볼드모트 사료’로 부른다. 과거 사료 문제가 터졌을 때 사료명을 직접 거론했다가 업체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한 반려인이 있어 사료명을 일부러 언급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 반려묘 온라인 카페 등에서는 “볼드모트 사료 리스트를 공유해 달라” “이 사료도 볼드모트 사료에 해당하냐”며 불안을 호소하는 글도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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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한수의학회는 앞서 “증상을 고려할 때 원충성 질병이 유력하게 의심된다”는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대한수의학회 측 관계자는 19일 “다수의 사례를 접수한 결과 원충성 질환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검사 의뢰를 받은 사료 30여건 가운데 3건을 검사했는데 아직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다른 사료와 부검 의뢰받은 고양이에 대한 유해물질, 바이러스 검사를 추가로 할 예정이다.

의심을 받는 사료의 제조원과 사료회사 역시 “아직 문제가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지난 12일 대한수의학회의 입장문에 대해 “원인으로 의심되는 기생충성 질병은 다양한 경로로 감염될 수 있다”면서 “기생충 질환의 원인인 충란은 70도에서 최소 10분간 가열하면 죽는데 해당 제조원의 사료는 120도에서 최소 20분간 익히고 있다”고 밝혔다.

논란이 이어지자 문제의 사료 판매를 중단한 업체도 있으나 여전히 시중에 판매 중인 것도 있다. 심 대표는 “피해가 대규모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선회수’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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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볼드모트 사료’ 섭취 이후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제공


반려인들은 관련 규제가 너무 느슨하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수입사료 사후관리기준’과 ‘사료검사기준’을 개정했는데 통관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동물성 원료와 이를 가공한 식품을 사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키우던 고양이 1마리를 떠나보낸 A씨(33)는 2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좋은 유명한 사료라서 먹인 건데 내 손으로 독약을 먹인 거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A씨는 “정부가 사료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는데 믿기 어렵다”며 “신뢰가 안가서 외국산 사료를 먹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역시 키우던 고양이가 숨진 B씨(33)도 “예쁘고 착한 고양이를 죽게 한 게 내가 사서 먹인 사료인 것 같아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사료 안전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고양이 사료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제조업체가 멸균·살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기회에 반려동물용 사료 관리를 위한 별도의 법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수의학회 관계자는 “사료관리법의 유해 물질 기준 등은 대부분 소, 닭 등 축산동물 기준”이라며 “종마다 다른 특성을 반영한 사료 관리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의사인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사료 유기농 인증 등은 산업을 키워주기 위한 제도로 변질된 경우가 많다”면서 “기준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인증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AI 바이러스 검출 고양이 사료 ‘고병원성’ 확인…1만3000개 이상 팔렸다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308041602001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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