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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슈 연금과 보험

연금 자산 주식 투자한 美, 백만장자 2배 늘었는데 예·적금 집중한 한국은 평균 수익 6000만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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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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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퇴직연금 제도 선진화를 위해선 미국,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 자산을 주식에 집중 투자한 미국에선 ‘연금 백만장자(100만달러 이상 잔액보유·약 13억원)’가 증가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 자산을 예·적금에 묻어놓는 한국의 경우 노후 보장이란 제도적 취지를 달성 못 할 가능성이 크다. 호주의 경우 수익률이 기준에 못 미치는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하고 있다.

미국의 연금 백만장자는 4년 동안 2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매니지먼트앤드리서치(FMR)에 따르면 자사를 통해 확정기여(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운용하는 미국인 중 연금 백만장자수는 68만8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팬데믹 당시인 2020년 1분기(30만7000명) 대비 124% 급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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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연금 백만장자가 늘어난 건 연금 자산의 86%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금 전문가들은 미국인은 은퇴 때 최소 70만달러(약 9억원)의 연금 자산을 확보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올해 들어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미국인들의 연금 자산은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실제 미국 뉴욕의 ‘금융의 심장’ 월스트리트에서 종사하는 마이클 코이 씨(37)는 매년 DC형 퇴직연금 계좌를 통해 미국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2020년 팬데믹 이후부턴 기술·성장주들 기업가치가 뛰면서 기술주펀드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코이 씨는 매일경제와 만나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같은 ‘매그니피센트7(M7)’ 투자를 좋아한다”며 “최고의 기업들에 연금 자산을 투자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미국에서 월급쟁이 생활하면서 노후 준비하는 방법은 꾸준히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20대 초반부터 연금투자를 한도에 맞춰 지속했다면 50대 중·후반 100만달러(약 13억원)까지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연금 자산의 85%를 예·적금이나 국채를 비롯한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자 중인 한국의 퇴직연금 평균 투자잔액은 약 55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퇴직연금 자금은 대부분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실태다. 2022년 한국의 퇴직연금 적립금 335조원 중 원리금보장형 비중은 286조원으로 85%에 달했다.

美 연금자산 공격적 투자
예·적금에 연금 자산이 묶인 한국과 다르게 미국 청년들은 연금 자산으로 기술주에 투자하는 게 흔하다. 공격적인 투자로 연금 자산을 불린 후 중·장년이 되면 가치주, 배당주 비중을 늘리며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조정한다.

전문가들은 미국 연금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금 투자 상품으론 뱅가드의 기술주펀드인 ‘뱅가드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 인덱스 펀드(VITAX)’를 거론한다. 해당 펀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브로드컴, 어도비, 세일즈포스를 비롯한 우량 기술주 300여 개를 담았다. 최근 1년, 5년 누적 수익률이 각각 48%, 181%에 이른다.

막대한 연금 자산의 주식시장 유입은 수급상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주가가 오르면 연금 투자자들 계좌가 부유해지는 선순환 효과로도 이어진다.

이병선 모건스탠리 연금 디렉터는 “고령화로 공적연금 역할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선 ‘자산 굴리기’를 통해 연금의 절대 규모를 늘려야 한다”며 “복리효과에 가장 적합한 자산이 주식”이라고 밝혔다.

연금 자산은 주식시장에도 호재
연금 자산의 주식시장 유입은 증시에도 호재다. 막대한 자금이 증시로 몰려들고, 이는 주가를 끌어올려 연금 자산이 불어나는 선순환도 이어진다. 야쿱 아흐메드 프랭클린템플턴 은퇴보험대학저축 부문 대표는 “은퇴 자금의 주식시장 유입이 엄청나 시장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 TD코웬,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국의 연금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꺼리지 않으면서 연평균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연금 자산 규모는 약 4000억달러(약 524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코스피 시가총액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미국의 DC형 제도인 401K에선 법적으로 주식 투자에 대한 비중 제한이 없어 투자자들이 타깃데이트펀드(TDF)를 통해 자유롭게 다양한 주식형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케빈 머피 프랭클린템플턴 미국투자전용부문 부사장은 “자본주의가 있는 한 결국 시장은 우상향한다”며 “개별주 투자는 장기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인 운용사가 제공하는 TDF 투자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크리스 폴라드 TD코웬 매니징 디렉터는 “최근 주요 기술주들 성과가 좋았는데 퇴직연금 자금이 해당 주식들에 몰린 점도 주가 상승의 주요한 요인”이라며 “연금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상품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인덱스 펀드로 기술주, 가치주, 배당주 분산투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와 노동부에 따르면 401K를 통해 주식에 투자되는 비중은 총 86%에 달한다. 미국 주식 47%, 주식·채권 혼합 28%, 글로벌 주식 11% 순이다. 주식형 자산 증가로 인해 2019년과 2020년 401K의 평균 수익률은 각각 20.1%, 14.1%에 달했다.

양호한 수익률은 퇴직연금 적립금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401K 적립금은 2000년 1조7380억달러에서 지난해 3분기 6조9350억달러로 늘었다. 401K 포트폴리오 중 주식형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뮤츄얼펀드 비중도 1995년 2660억달러(30%)에서 지난해 3분기 4조3230억달러(62%)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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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혜택이 갈라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퇴직연금을 통해 주식 투자를 늘리는 요인으로 ‘세제 혜택’을 강조했다. 실제 미국 401K의 경우 연간 적립금의 100%에 소득공제 혜택이 적용된다.

모건스탠리,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미국 401K의 연간 적립금 한도는 2만3000달러(약 3000만원)다. 401K의 세금 공제 한도는 적립금 한도와 동일하다.

연간 적립금 규모가 점차 늘어날수록 자연스레 세제 혜택도 커지는 구조다. 지난 2020년 401K의 소득공제 한도는 1만9500달러에서 2022년 2만500달러, 2023년 2만2500달러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만약 매년 401K 한도에 맞춰서 연금 자산을 굴려온 투자자라면 매년 발생하는 소득세에서 2만3000달러만큼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특히 50세 이상의 경우 추가 한도가 붙는다. 올해 기준 추가 한도는 7500달러로 50세 이상 투자자의 경우 연간 3만500달러의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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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머피 프랭클린템플턴 미국투자전용부문 부사장은 “401K 계좌에 수익이 발생해도 근로자가 인출하지 않는 이상 세금을 아예 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의 경우 세제 혜택이 미국 대비 부족하다. 연금저축(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해 세액공제 규모는 연간 900만원으로 401K의 3분의 1 수준이다. 올해 들어 공제액이 200만원 상향되긴 했지만, 지난 8년 동안은 700만원 수준에 머물렀다. 공제 한도가 부족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연금 계좌에 자금을 넣어 투자하겠다는 수요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렛 세이버그 TD코웬 매니징 디렉터는 “낮은 공제 한도가 주어지면 연금 투자의 매력이 감소한다”며 “근로자, 고용주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해 충분한 은퇴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기준에 못 미치면 투자 상품을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는 호주의 정책을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호주 퇴직연금은 최대 8%의 안정적 수익률을 유지 중인데 그 비결로 호주건전성감독청(APRA)이 직접 매년 실적이 저조한 상품을 솎아내는 퍼포먼스(성과) 제도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호주 당국은 가입자에게 부과하는 수수료를 표준화하고 APRA 홈페이지를 통한 다양한 디폴트 상품에 대한 공시 기능을 강화해왔다. 투자 전략부터 수익률, 위험지수, 수수료를 비롯한 정보를 공시해야만 한다. 2021년부터는 성과가 가장 나쁜 곳을 분석하고 저성장 펀드를 골라내고 있다. 투자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하고 실제 수익률이 기초자산별 기준 수익률보다 연간 0.5%포인트 이상 낮으면 불합격하는 것이다. 펀드가 한 해 미달 판정을 받으면 가입자에게 불합격 사실을 알리고 다른 펀드로 옮기는 게 나을 수 있다고 고지해야 한다. 2년 연속 불합격하면 신규 가입자를 받을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뒀다.

자산운용사 IFM인베스터스의 잭 메이 이사는 “당국에서 해당 정보를 투명하게 고지하고, 투자자는 불합격 공지 등을 살펴 투자 상품이나 옵션을 바꾼다”면서 “펀드 상품과 관련한 안내물을 우편으로 보내고, 수탁회사가 내놓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자신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호주에서는 올해 기준으로 만 30세 성인이 30년을 근속하면 평균 50만호주달러(약 4억3300만원) 안팎을 받게 된다. 현재 65세가 되어서 퇴직을 시작한 이들(정규직·계약직 모두 포함)의 중간값 기준으로도 25만~30만호주달러(약 2억1600만~2억6000만원)를 받는다. 본인이 기업에서 근속하는 경우는 기업이 알아서 매달 연금을 납입해 별도로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퇴직 후 한 달에 160만원 이상 받는 기초연금은 별도다.

가입자들은 디폴트옵션인 마이슈퍼 도입 이후 자신의 투자 성향에 따라 퇴직연금 수탁회사들이 만든 각각의 옵션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옵션은 각각 현금 보유, 보수적, 보수적 성장, 성장, 고성장 유형으로 나뉜다. 생애주기에 따라 20~30대는 해외주식의 비중을 높게 구성한 고성장이나 성장 옵션에 집중하는 반면, 은퇴 시점이 다가오면 보수적인 자산배분을 노리는 옵션으로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차창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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