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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朝鮮칼럼] 프랑스 좌우 동거정부에서 배울 협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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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정부는 나쁜 선택이지만

최악보다는 낫다

내정은 야당이 심판받고

여당은 외교 안보만 평가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일치시키는 정치개혁도 필요

여소야대, 피하려면 피할 수 있다

여당의 4·10 총선 참패로 국회의 여소야대 구도가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지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치를 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협치의 조건과 방식을 결정할 칼자루는 입법권을 장악한 제1 야당이 쥐고 있다. 윤 대통령이 총리와 일부 요직을 야권에 할당하는 방식의 연정이나 거국내각을 제안하더라도 이재명 대표가 수용해야 성사될 수 있다. 증오와 불신이 여야 관계를 지배하고 상대방을 국정의 동반자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치문화에서는 연정이 성사되더라도 협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 탈환을 노리는 야당이 정부·여당의 치적으로 인정될 정책에 적극 협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 간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권력분점이라면 야당이 거부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권력분점 방식으로는 프랑스의 좌우 ‘동거정부(cohabitation)’ 모델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9차 개헌으로 출범한 우리의 제6공화국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각기 5, 4년으로 달리한 데서 여소야대가 발생하듯, 1958년 출범한 프랑스 제5공화국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각기 7, 5년으로 함에 따라 세 번의 여소야대 상황을 겪은 바 있다. 여소야대가 발생할 때마다 대통령은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의 대표를 총리로 임명하고, 외교안보부처를 제외한 부처의 조각을 맡기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1986~1988년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내각 간의 1차 동거정부에서 1997~2002년간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내각 간의 3차 동거정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식 협치는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하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국민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선진국 중에서 한국과 공통점이 유난히 많은 나라다. 프랑스가 공화제와 군주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오가며 모든 형태의 정치실험을 거친 끝에 선택한 제도가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대통령제이고, 여소야대의 해법으로 동거정부를 택한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벤치마킹하자고 하면 총선에서 겨우 5.4% 졌다고 정권을 완전히 야당에 넘겨주자는 망발이라고 비분강개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거대 야당과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실효적 통치수단은 거부권과 사면권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향후 3년간 권력분점 없이 윤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가야 하지만, 결국 최악과 차악(次惡) 가운데서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악은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국정동력을 상실한 채 사사건건 야당의 횡포와 훼방에 시달리며,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입법이 번번이 좌절되는 것이다. 야당의 비협조로 실패한 정책에 대해 정부·여당이 대선에서 심판을 받는 억울한 일도 당할 수 있다. 동거정부는 매우 나쁜 선택이지만 최악보다는 낫다. 야당이 책임을 맡을 내정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야당이 심판을 받고, 여당은 입법에 의존하지 않는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심판만 받으면 된다. 동거정부를 선택하더라도 대통령이 꼭 야당 대표를 총리로 임명하라는 법은 없다. 제1 야당의 대표가 천거하는 인사 가운데서 총리를 지명하고, 총리가 헌법에 규정된 각료 제청권을 확실히 행사하면 헌법 개정 없이도 대선과 총선에서 표출된 민의를 균형 있게 반영한 이원집정제로 진화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내정의 위기는 사람의 문제를 넘어 87년 체제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므로 정부 형태의 개편을 포함한 정치개혁도 필요하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고 양대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면 여소야대가 발생할 소지를 제거할 수 있다. 프랑스도 2000년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축소하여 국회의원 임기와 일치시키는 개헌을 한 이후로는 여소야대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중선거구 제도 도입을 통해 다당제를 정착시키고 정부 형태를 내각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내각제를 채택했다가 1년 만에 5·16으로 막을 내린 불행한 기억과 60여 년간 제왕적 대통령제에 익숙한 탓에 내각제는 왠지 낯설고 허약해 보이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의원내각제하에서는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나오면 국정을 일사불란하게 이끌 수 있고,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을 때는 연정을 통한 협치가 제도화되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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