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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시대 전환” 선언 2년 독일…‘전쟁 준비’ 잰걸음 속 징병제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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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1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군부대를 방문해 독일연방군 주력전차로 우크라이나에도 제공된 레오파르트2에 탑승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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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속력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63) 독일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75주년을 맞아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독일연방군의 ‘전쟁 준비’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베를린에서 열렸던 정부 회의에서는 “또다시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은 반드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독일군은 다시 전쟁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의 이런 강경 발언은 2년 전인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올라프 숄츠 독일 정부가 표방한 ‘시대 전환’(Zeitenwende)과 관련이 있다. 숄츠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사흘 뒤인 2022년 2월27일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유지돼온 독일의 방위 정책을 대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 국방비를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방위비 지출 목표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시대 전환”을 위한 첫걸음으로 독일연방군 현대화를 위해 같은 해 1000억유로(약 145조8250억원)의 특별기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법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일본과 달리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1955년 독일연방군을 창설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과오를 기억하는 독일인들은 그동안 독일군을 나토에 기여하기 위한 부수적인 존재 정도로 받아들였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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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전환’ 가속페달 밟는 국방장관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지난해 1월 국방장관 취임 이후 독일의 “시대 전환”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그는 ‘전쟁 준비’를 위해 취임 뒤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취임하기 전엔 독일 정부 특별기금 대부분은 쓰이지도 않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2500만유로어치 군사 장비를 55번에 걸쳐 조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특별기금에서 192억유로(27조4000억원)를 지원받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예산을 더하면 1992년 이후 처음으로 독일 국방비는 올해 국내총생산 대비 2%라는 나토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 추세면 독일은 2025년엔 영국을 제치고 유럽 최대 국방비 지출국 자리를 되찾게 된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의 이런 행보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지지도 높다. 지난해 12월 독일의 정치·경제 조사 기관인 ‘새로운 사회적 해결책을 위한 연구소’(INSA)가 실시한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2%는 피스토리우스 장관이 “독일 정치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이 속한 집권 여당인 사회민주당 지지자뿐 아니라 보수 야당인 기독교민주당(CDU)-기독교사회당(CSU) 연합 지지자 56%도 이런 답변을 했다.



독일 국방부는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국내총생산 대비 2% 방위비 기준은 (예산 사용의) 천장이 아닌 바닥이 되어야 한다”며 2%를 넘어선 지출까지 주장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의 발언은 허황된 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그는 올해 국방 예산에 100억유로(14조원)를 추가 편성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실제 반영된 건 요구액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18억유로(2조6000억원)에 그쳤다. “병사들의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만도 부족한 수준”이란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조성한 1000억유로 특별기금도 2027년부터 줄기 시작해 2028년엔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이에 대비해 해마다 250억~350억유로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독일 외교 정책 연구기관인 독일외교정책협회(DGAP)는 지난해 6월 펴낸 ‘독일 국방 지출―새로운 시대가 아닌 과거의 반복’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미 “(국방비 국내총생산 대비) 2% 목표와 상관없이 병력 유지, 일상적인 군 운영비 등 모든 분야에서 재정적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군 운영비가 많이 올라서 국방비 일부 증액 정도로는 독일 군사 정책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 협회는 “(독일 정부가 마련한) 특별기금으론 이 중 일부만 충족시킬 수 있고, 일반 국방 예산 규모를 늘리지 않고는 국방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방예산 요구액 20%만 반영…정부-군, 팽팽한 긴장





독일연방군과 정부 사이 긴장도 팽팽해지고 있다. 독일연방군 현역 및 예비역들이 꾸린 일종의 이익단체인 연방방위군협회의 대표인 안드레 뷔스트너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숄츠 총리에게 지속적인 재정 확충에 대한 “강력한 약속”을 요구했다. 현역 대령인 뷔스트너 대표는 “방어 능력이나 방위 (강화) 같은 말이 공허한 한마디에 그치지 않으려면 숄츠 총리는 정책적 결정을 위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연방군에 (러시아 등에 대응할) 터닝 포인트는 끝장났다고 선언해야 할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뷔스트너 대표의 발언은 지난 8일 피스토리우스 장관이 독일 제2텔레비전(ZDF)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추가로 빚을 내는 것까지 논의해야 한다”며 안보를 위해 ‘국가부채 제동장치’(Debt brake)의 예외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한 뒤 나온 것이다. 2009년 독일 헌법 격인 기본법에 규정된 제동장치 조항은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출을 막기 위해 국내총생산의 0.35%까지만 부채를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다만 자연재해나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는 연방의회에서 적용 제외를 결의할 수 있다. 독일 신호등 연정에 참여 중인 친기업 자유주의 성향 자유민주당과 자민당 소속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에게 국가부채 제동장치는 “금기와도 같은 것”(슈피겔 보도)인데,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이를 허물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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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병력 확충 위한 ‘의무복무제 도입’도 불투명





재정 확충 압박과 함께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이달 초 나토 창설 75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대대적인 군사 개편안도 발표했다. 국외 임무를 지휘하는 작전사령부와 국가 방위를 담당하는 영토사령부를 통합작전사령부로 통합하는 등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한 군으로 재편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연방군 장병 모집 방안도 관심을 끌고 있다. 독일연방군은 현재 18만명 수준인 병력을 2031년까지 20만300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퇴역자를 고려하면 매년 약 2만명의 신규 모집이 필요하지만 군복무 지원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군 인원 확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6개월 이내에 안을 마련하겠다며 구체적인 발표를 미뤘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징병제 부활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되어 있을 당시인 1950년대에 양쪽 모두 의무복무제를 실시해오다가 독일 통일 이후에도 징병제를 유지했다. 2011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 때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숄츠 총리는 징병제 복귀에 부정적이라 실현 가능할지 전망은 불투명하다. 독일 언론사 에페데(EPD) 보도를 보면, 피스토리우스 장관의 군사개편안 발표 뒤 숄츠 총리는 “우리는 징병제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독일 언론들은 보도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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