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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손자 볼 나이에 의대 진학한 정두현, 57세에 박사학위 딴 김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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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 시리즈 첫 권…'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출간

15년 연구 결실…김근배 교수 "과학자 200명 조명할 것"

연합뉴스

과학·의학·농학 고등교육 이수자인 정두현 교수
[국사편찬위원회·세로북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과학자 정두현(1887~미상)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처음엔 농학자로 출발했다. 1911년 도쿄제대 농학실과에 입학한 그는 귀국 후 숭덕학교 교장, 숭인학교 교장을 지냈다. 나이 마흔에는 교장직을 그만두고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생물학을 전공했다. 당시 마흔이면 손자 볼 나이였고, 실제 손자도 있었다. 공부를 끝내고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숭실중학교장이 된 그는 1938년 학교가 폐교되면서 직장을 잃었다. 그때 나이 쉰하나. 삶을 정리하며 노후를 보낼 나이에 그는 다시 향학열을 불태웠다. 대만 다이호쿠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한 것이다. 그는 1941년 졸업 후 경성제대 의학부를 거쳐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 교편을 잡았다.

김일성종합대학 의학부장에 임명됐지만, 평양 학계의 주도권은 사상적 색채가 강한 월북 인사들이 틀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당대 소련에서 유행해 북한에도 주류가 된 리센코의 유전 학설을 부인하고, 전통적인 '멘델·모르간 유전학'을 고집했다. 그는 점점 소외돼 갔다. 그러더니 마침내, 1951년부터는 소식이 아예 끊겼다. 그 어디에서도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다양한 분야의 학위를 가진 뛰어난 학자였지만,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는 완전히 잊힌 인물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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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 전 서울여대 교수
[세로북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만학도 하면 김삼순(1909~2001) 전 서울여대 교수도 정두현 교수 못지않다. 전남 담양의 유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여성 차별이 만연한 시대와 싸워야 했다. 서울로, 도쿄로 유학하러 갈 때마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들이 시집가야 할 '과년한 딸'을 외지로 내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추천, 다른 가족들의 지지를 얻은 후에야 비로소 공부하러 갈 수 있었다.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교편을 잡은 그는 박사 학위를 꼭 따고 싶었으나 이번에는 전쟁이 발목을 잡았다.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유학 준비를 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진 것이다. 전쟁 기간 중 의지하던 오빠가 죽고, 자기 건강도 악화했으며 뒤이어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몸을 추스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1967년 규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한국 여성 최초의 농학박사가 된 것이다. 그의 나이 57세 때의 일이다. 그는 국내에 돌아와 건국대, 서울여대 교수로 일하면서 느타리버섯 인공 재배를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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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 재직 시절 이원철
[연세대학교 기록관·세로북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정두현, 김삼순의 이야기는 최근 출간된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에 실린 내용이다. 책에는 이들의 삶뿐 아니라 한국의 첫 수학자인 이춘호(1893~1950), 스타 과학자로 인하공대 초대 학장을 지낸 이원철(1896~1963), 지난달 별세한 위상수학 권위자 권경환(1929~2024) 등 자연과학 분야 인물 30명의 삶이 담겼다.

전북대 과학학과 김근배·이은경·선유정 교수가 이들의 삶을 복원해 냈다. 김 교수 등은 15년 전부터 '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책은 그들의 첫 결실이다. '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은 근현대에 명멸했던 한국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열전 형식의 책이다. 모두 6권으로 구성됐으며 첫 권인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자연과학 분야 인물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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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북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열전 시리즈는 '자연과학 편'을 시작으로 '공학기술 편' '정책문화 편' '의약학 편' '농림축수산학 편' '북한 편'이 차례로 출시될 예정이다. 편별로 30명 정도, 모두 200명가량의 과학자를 망라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대표 편저자인 김근배 교수는 서문에서 "과학자의 성취를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서 충실히 이해함으로써 현재의 관점으로 그들을 편향되게 바라보는 '휘그주의'(Whiggism)의 한계를 해소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세로북스. 752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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