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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스토킹 피해자 80%는 죽음까지 고민하는데…자살 피해 고려 못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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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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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어떻게든 불행으로 이끄는 못된 놈들… 모든 것을 접고 떠나려 해.”



스토킹 범죄 피해자 ㄱ씨는 이런 글을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 ㄴ씨가 지인을 동원해 ㄱ씨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ㄱ씨 것이라며 성관계 음성을 들려주는 등 수차례 피해자를 스토킹한 뒤였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법정에 세워진 ㄴ씨는 2023년 10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피해자 혼인을 파탄하기 위해 범행했고 (…) 범행으로 극심한 불안감과 절망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ㄴ씨처럼 스토킹 범죄로 피해자 일상을 위협하고 파괴해 피해자가 삶을 지속하지 못하게 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은 헤어진 여자친구를 26개월 동안 스토킹해 자살에 이르게 한 남성을 협박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대구에서도 2022년 스토킹 범죄 피해자 자살 이후 가해자가 불구속 기소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현행 스토킹처벌법엔 피해자 자살 등 중대한 피해를 유발한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국외와 다르게 피해에 상응하는 죗값을 묻는 데 한계가 있는 법 체계란 지적이다. 스토킹처벌법엔 ‘흉기 또는 그 밖에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는 가중처벌 조항만 있다. 흉기를 소지하지 않은 경우 처벌 규정은 3년 이하 혹은 3000만원 이하로 돼 있다.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 일상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자살 위기에까지 몰아넣는다. 실제 2021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스토킹 방지 입법정책 연구’를 보면, 스토킹 피해자 256명 가운데 205명(80.1%)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문항에 ‘심각하게 그렇다’고 했다. 스토킹 피해자 지원 활동가들은 가해자를 피해 수차례 이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피해자는 ‘내가 죽어야 (이 범죄가) 끝나겠구나’라고 완전히 절망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국내법과 달리 오스트리아 등 국외에선 피해자 자살을 야기한 스토킹 범죄를 더 무겁게 처벌하는 법 조항이 존재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스토킹 범죄의 특성 및 대응 강화 방안’을 보면, 오스트리아는 스토킹이 1년 이상 지속해 피해자가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한 경우 3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는 조항(형법 107조a 제3항)이 있다. 일반적인 스토킹 범죄 처벌은 1년 이하 자유형이지만 피해자가 자살한 경우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더 강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독일 형법 238조 2항은 스토킹으로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 및 가까운 사람이 사망 또는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경우 ‘결과적 가중범’(일정한 고의에 의한 범죄 행위가 그 고의를 초과해 중한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 그 결과를 이유로 형이 가중되는 범죄)으로 보고 가중처벌한다. 피해자 자살이 발생한 사건에서 해당 조항을 적용해 가중 처벌한 사례도 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스토킹으로 사망이나 상해가 발생한 경우 △미성년자에 대한 행위 △장기간 지속 행위 등에 대해 가중처벌 조항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참여한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한겨레에 “가중처벌 조항이 형량 강화로 이어진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스토킹 가해자들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위협이나 공포를 느끼도록)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피해자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 가중처벌 조항 존재만으로도 가해자에 심리적인 압박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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