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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국내 첫 기후소송 공개변론…“한국, 온실가스 감축 책임 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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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23일,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국내 최초의 ‘기후소송’ 공개변론이 열렸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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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부족해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후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대 ‘무리한 탄소배출 감축 목표는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고, 기업경쟁력 약화와 고용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



23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국내 최초의 ‘기후소송’ 공개변론이 시작됐다. 이날 변론은 2020년 3월13일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낸 헌법소원과 이후 시민·영유아 등이 청구한 다른 3건의 기후소송이 병합돼 진행됐다.



이종석 헌재소장은 이날 공개변론을 시작하며 “기후소송인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청구인들의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최근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다양한 결정이 선고됐고 최근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이 불충분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려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며 “재판부도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인식해 충실히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공개변론에 대한 이례적 관심”(헌재)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날 104석 규모의 헌재 대심판정은 거의 자리가 채워졌다. 헌재는 이날 대심판정 옆 소심판정(40석 규모)에서 실시간 중계방송을 시청하도록 방청객들에게 개방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과 그 시행령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NDC)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목표로 하고 있다. 오후 2시부터 5시간가량 진행된 첫 공개변론에서 양쪽 대리인들은 정부의 감축 목표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는 내용의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지키기에 미흡한지를 두고 열띤 공방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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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소를 제기한 청소년기후행동 등 기후소송 원고 단체 활동가와 공동 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의 취지 및 쟁점을 설명하며 빠른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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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인 쪽에서는 ‘정부가 정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는 책임을 외면하고 후세대에게 감축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위헌을 주장했다. 이병주 변호인은 이와 관련해 “2031년부터 2042년까지는 세부 감축 계획이 없고 연도별 대책도 없으며, 앞선 계획들이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할지 계획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정부 쪽에서는 파리협약이 우리 헌법적 가치보다 상위에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나라가 처한 사정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는 게 맞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재학 변호인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즉각적인 감축이 힘들다”며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의 연도와 산업구조, 감축을 시작한 시기 등이 달라 실정에 맞게 감축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아울러 청구인 쪽에서는 “한국은 1인당 배출량 7위,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13위로 책임이 크지만 (2010년을 기준으로 한) 감축률은 27% 수준으로 낮다”며 “미국, 유럽연합 등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주요 국가들(40~50%)에 비해 한국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윤세종 변호인)이라고도 지적했다. 반면 정부 쪽에선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해 에너지 소비가 많은 환경적 요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구조가 제조업 중심”이라며 “(현재 목표도) 사회경제적 대전환이 필요한 도전적 목표”(김재학 변호인)라고 반박했다.



‘탄소 예산(1.5℃ 이하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 배출량) 소진 시기가 임박했다’는 주장 등을 놓고서도 양쪽이 충돌했다. 청구인 쪽 이병주 변호인은 “남아 있는 전세계 탄소예산(5천억톤가량)을 각국의 인구 비례 기준으로 나누면 한국은 33억4천만톤인데, 한국은 2030년 이전에 1.7도 예산까지 다 소진된다”며 “현재 감축 목표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부 쪽 정한결 변호인은 “글로벌 탄소예산을 국가별로 배분하는 방식은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다. 인구 비례를 기준으로 감축 경로를 설정하는 경우 한국은 당장 산업구조 전반을 조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날 변론 과정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정부 쪽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에 필요한 세부적인 규정과 기준을 마련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질의하기도 했다. 정정미 재판관은 ‘2030년 이후 감축 목표와 경로가 없다’는 청구인 쪽 주장을 언급하며 “2030년 이후 목표가 없으면 혼선이 발생하지 않겠냐”고 했고, 문형배 재판관은 정부가 2030년은 순배출량을 적용하면서도 2018년엔 총배출량을 적용한 점 등을 지적하며 “개념을 섞으니 국제사회나 환경단체가 정부의 조치가 투명하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또 김형두 재판관은 ‘2020년 감축목표를 지키지 않고도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청구인 쪽 주장을 들어 “실제로 목표를 지키지 못했나”라고 묻기도 했다. 김재학 변호인이 김 재판관의 질문에 “2020년 목표를 이후 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답변하자, 방청객들 사이에선 실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기후과학자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과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를 각각 청구인과 정부 쪽 참고인으로 불러 질문하기도 했다. 조천호 전 원장은 이 자리에서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 매일 공부해서 10~20점 올리는 건 대단히 쉽지만 90점이 된 뒤에 1~2점 올리는 건 어렵다”며 “처음에 많이 줄이고 뒤에 가서 천천히 줄이는 형태는 국제사회의 권고이면서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안영환 교수는 “1.5도 목표에서는 멀어지고 있고, 기회의 창은 닫히고 있다”고 동의하면서도 “다만 탄소중립기본법에 이행점검 조항(9조)이 있고, 그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해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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