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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대형병원 응급환자 보겠다는 동네 의사, 퇴짜 놓은 보건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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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선일보

응급실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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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오전 10시 40분,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해 꾸려진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출입기자단에 A4용지 3장짜리 ‘보도 참고 자료’를 발송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따고 동네 의원 등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들도 이날부터 대형 병원 응급실이나 보건소에서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칙적으로 의사 한 명이 두 곳 이상의 의료 기관에서 동시에 진료하는 것은 불법이다. 다만 공익상 필요할 경우 관할 지자체장의 승인 하에 동시 진료가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차원이었다.

8일 뒤인 4월 2일, 기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현재 영남 지역에서 동네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였다. 그는 “응급실에 가서 진료를 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다. 그의 말은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다른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는지 물었는데, “둘 이상 의료 기관에서 동시에 진료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했다. 정부가 한시적으로 다른 병원 응급실 진료를 허용했다는 발표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보건소는 “보건의료 재난 위기 ‘심각’ 단계가 아니어서 안 된다”고 했다. 이때는 심각 단계로 격상된 지 39일 되는 시점이었다. 다른 동료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비슷한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정부가 발표만 하고, 현장 상황엔 깜깜하다”고 분노했다.

복지부는 4일 “일부 지자체와 심평원 관계자가 조치 사항을 숙지하지 못하고 안내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복지부는 22일에서야 지자체장의 승인 없이도 개원의들이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일시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당초 ‘응급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응급 조치’라고 발표했으면서 보완책은 28일 뒤에 내놓은 것이다. 이런 혼란이 빚어지는 사이 전국에선 응급 환자 등 총 5명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22일 정부 발표에는 그동안의 혼선에 대한 어떤 반성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자진해서 응급실 환자를 보려다가 ‘거절’당한 의사들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오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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