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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삼성이 쏜 '임원 주6일 근무'…"진작 했어야" vs "눈치싸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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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삼성이 임원 주 6일 근무를 확대하면서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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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임원 주 6일 근무’를 모든 계열사로 확대하면서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진 만큼 긴장감있게 대응하는 건 바람직하다는 반응이 많다. 동시에, 직원들 눈치 싸움만 가열되고,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강화할 것이란 지적도 팽팽하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주말 삼성전기·삼성SDI·삼성SDS·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관계사 임원들이 주 6일 근무에 처음으로 동참했다. 지난 토요일에 출근했다는 한 관계사 임원은 “이번엔 처음이라 일정이 없었으나 다음 주말부터는 임원들 회의가 예정돼 있다”라며 “평일에는 일상적인 업무 때문에 못 했던 새로운 산업 흐름에 대한 학습이나 아이디어 발굴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임원들은 조직 전반에 업무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직원과 ‘동반 출근’을 금지했다고는 하나, 임원들이 주말 출근의 성과를 내려면 결국 실무 담당 직원들의 손이 필요할 것이란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그만큼 현재의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해석한다.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제를 적용받지 않는 임원들은 기존에도 업무가 있으면 주말에 일해 왔는데, 이를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준감위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전 세계를 주도하는 사업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삼성도 위기에 처했다고 본다”며 “사장들이 주말에 출근하는 것을 보면 국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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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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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대응, 지금도 늦었다”



삼성이 ‘초격차’ 리더십을 놓친 상황에서 위기 대응이 오히려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에서 약 15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다. 올 1분기엔 실적이 개선됐으나 최근 이란-이스라엘 분쟁 등으로 환율과 유가 변동성이 커지며 한국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앞둔 삼성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의 위상이 옛날만 못한데, 과거의 방식대로 계속해선 안 된다”며 “경쟁사와 격차가 줄어든 상황인데, 오히려 위기 대응하는 속도가 늦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삼성이 불 붙인 임원 주6일 근무제가 다른 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에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임원들의 ‘토요 회의’를 부활하며 격주 주말마다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모여 글로벌 사업 전략을 점검하고 있고, 일부 계열사는 주간 회의도 월요일 아침 일찍 시작해 사실상 중간 직책자들은 주말부터 근무 모드다. LG화학과 이마트는 희망퇴직을 받을 만큼 상황이 어렵다.



“주6일 조직문화, 글로벌 인재 영입에 부정적”



다만 최근 3~4년간 원격·유연근무 등을 확대해온 기업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익명을 원한 10대 그룹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그동안 삼성전자 일부 임원만 주말에 출근해와 형평성 논란이 있었을 것이고, 내부 ‘군기 잡기’ 목적이 더 강해 보인다”며 “다른 기업들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주 6일 얘기를 꺼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 분위기 전체가 경직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삼성 계열사 직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한 삼성 계열사 직원은 “적어도 부장급 등 중간관리자들은 앞으로 매번 주말 근무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주 52시간이 넘지 않으면서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 ‘눈치싸움’만 더 고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직원은 “임원이 주말에 출근해서 일하다보면 실무 직원에게 연락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근무시간 증가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첨단기술 산업계 글로벌 인재들은 근무 시간이나 출근 여부가 아니라 성과 중심으로 평가·보상 받는 데 익숙한데, 삼성의 임원 주6일제 지침이 기존의 상사·위계 중심의 기업 문화를 강화한다면 최고급 인재들에게 삼성이 매력적인 직장이 되기 어렵다는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삼성전자 임원은 “목표를 향해 다같이 뛰는 조직 문화의 장점도 있지만, 그 전에 회사가 목표와 비전을 직원들과 잘 공유하는 게 먼저여야 하는데 삼성은 그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지금은 근면 성실의 시대가 아니라 창의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주 6일 근무는 젊은 우수 인재들에게 부정적인 관료제 이미지만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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