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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5평 토굴의 스님 “편하다, 불편 오래되니 ‘불’ 자가 떨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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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숨 쉬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봐요. 지금 숨 들어간다, 나온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라. … 들숨날숨 가만히 보고 있으면 멀리 떠돌던 잡념들이 내 안으로 돌아와요. 마음을 불러 몸 곁에 두는 거지. 몸과 마음이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거요. … 지혜는 내 것을 덜어낼 때, 내 몫을 덜 가질 때 나와요. 당장은 손해 같지만 나중에 돌아와. 삭히면 깊어지듯이.”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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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꽃달(花月)’, 들이나 산이나 백화난만이다. 겨울을 넘어온 동백과 더불어 납월홍매 산수유 봄을 열면, 춘분 즈음에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피고, 청명 지나 살구꽃 도화 라일락 피고, 그리고 명자 철쭉 피고지고, 여름 다되어서 모란이 큼지막한 얼굴을 내민다.



전에는 그렇게 순서대로 피었는데 요새는 앞뒤가 없다. 올해 녹우(綠雨)가 잦아 산에 물이 많고 봄인가 하면 여름이어서 그런지, 더 그렇다. 사월 지리산에 삼월 꽃도 더러 있고, 오월 꽃도 다투어 개화하니, 좋기는 하지만 통 정신이 없다. 전채 먹고 수프 먹고, 차근차근 입가심하고, 코스요리 나오듯이 봄 꽃구경이 그러했는데 지금은 한상 떡 벌어지게 차린 한정식처럼 눈도 마음도 바쁘고, 벌도 나비도 바쁘다.



산색은 어느새 연두를 삼키고 초록으로, 등고선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이맘때 지리산은 ‘녹우(綠牛)’, 푸른 소 같다. 머리를 해 뜨는 동으로, 꼬리를 서쪽으로, 몸뚱이를 길게 늘어뜨리고 천년만년 엎드려 있는 거대한 한 마리 푸른 소. 그 구불구불 능선이 소의 등뼈, 지리산 1백리 종주길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지눌의 ‘정혜결사문’ 첫 문장처럼 우리가 곤궁할 때, 묵묵히 사흘을 걸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그 길이다.



소의 육신은 사방팔방 비탈을 이루며 헤아릴 수 없는 겹겹의 주름 폭을 이루고 있다. 소의 남사면,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 하동 방면이다. 여기를 ‘겉지리’라 한다. 소의 북사면, 남원 함양 산청 방면을 ‘속지리’라 한다. 양지바른 겉지리에 절집이 많고, 해가 짧은 속지리엔 당집(巫堂)이 많았다. 그래서 남향으로 화엄사 쌍계사, 한 산에 두 본사(本寺)가 자리하고, 북향으로 실상사 벽송사 같은 몇몇 절이 산재한 골짜기 곳곳에 당집이 여럿 남아 있다.





“몸과 마음이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거요”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쪽으로 들어간다. 유명한 벚꽃터널 10리를 지나 쭉 가다가 삼거리에서 좌로 빠지면 칠불사이고, 오른편 찻길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나온다. 신라 최치원이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했던 의신마을이다. 여기서 7㎞ 쯤 오르면 달 밝은 벽소령이다. 지리산의 한가운데, 소의 갈비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산모퉁이 돌아 작은 암자가 있다. 암자는 꼭 바로 보여주지 않고 한 땀 빼고, 한 모퉁이 돌아야 나온다.



‘연암난야’, 집 처마에 소박한 현판이 걸려 있다. ‘연암(蓮庵)’은 서산대사가 머물었던 수행처 이름에서, ‘난야(蘭若)’는 토굴을 뜻하는 범어 아란야에서 가져왔다. 산죽으로 울타리 친 마당에 보리수 청매 한 그루, 밤나무 두 그루, 싹을 내민 파초 한 무덤, 올챙이 노는 작은 연못, 그 앞에 빈 의자 놓여있다.



여러 해 지나 다시 오니 마당에서 포행 하던 스님 반가이 맞아준다. 집은 다섯 평, 천장은 낮고 공간은 좁다. 마루와 부엌, 사람 둘 눕기도 좁은 방 하나, 그리고 벽장 속에 손바닥만 한 부처님 앉아 계시다. 합장하고 창을 여니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소리 들리지요? 빗점골 계곡 따라 내려가는 소리요. 가만히 들어보면 옛날 고향바다의 파도소리 같아. 물에 발을 담고 있으면 이 물이 흘러 부산 앞바다로 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지.”





가진 것은 보리수 청매 한 그루, 빈 의자…





도현스님, 초등학교 졸업하던 열다섯에 밥 굶지 말라고 절에 보내져, 1963년 부산 범어사에 덕명스님을 은사로 동진(童眞)출가했다. 20여년 선방을 돌며 간화선 수좌를 하다가 태국에서 5년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돌아왔다. 칠불사 선방에 살다 이곳에 터 잡은 지 30여년, “중노릇이 회갑을 넘은” 선사다. 쌍계사 안거결제 때 한가운데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방장’급 스님이다. 그런데 절도 없고, 시자도 없고, 공양주도 없고, 문중도 있지만 없고, 주지도 안 하고, 차도 없고, 돈도 없이 ‘무사찰주의’를 고집하며 혼자 산다.



“은사스님이 여러 번 찾아와 주지 맡으라고 했지요. 안 갔어. 나는 선객이라, 주지 맡아서 큰 불사 벌이고 그런 것 소질이 없어 못해요.”



“그래도 나날이 돈이 드는데 살림살이는 어찌 하시냐”고 물었다. 여기는 큰 절 소속 산내암자하고는 다르다. 아무 지원도 없는 완전한 ‘독살이’다.



“아침 먹으면 점심 걱정하고, 추수하면 보릿고개 걱정하는 것이 사람이지. 하루는 가지에 앉은 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디다. 거울도 없이 깃털을 잘도 다듬는구나, 쌓아놓은 재산도 없이 잘도 살아가는구나! 부처님 믿고 한번 살아보자, 내가 하루살이는 아니고 ‘한달살이’요.”



가끔 큰 절에 법문도 다니고, 오랜 인연의 신도들이 좀 있다. 마을사람들도 들여다보고, 더러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찾아와 보시를 하곤 한다. 그들에게 한 달에 한번 편지를 쓴다. 소소한 일상, 계절의 변화, 울화통 삭히는 비법 같은 법문을 담아 글을 보낸다. 그런 세월이 30년 넘었다. 편지는 ‘조용한 행복1, 2’ ‘나라고 불리어지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 등 4권의 책으로 나왔다.





법정스님 어깨너머로 배운 글





“스님 글이 법정스님을 닮았어요” 했더니, “그렇지, 법정스님 어깨너머로 배운 거라. 송광사 선방 살 때 불일암 가서 차도 마시고 했는데 여기서 같이 살자 하시더라고, 그래서 은사처럼 모시고 살았어요. 저 파초가 스님이 가져온 불일암 파초요” 한다. 그러면서 “편지가 가잖아요? 그러면 전신환이 와. 우체국으로도 오고. 그 안에 보시가 들어있지. 다들 사는 것이 바쁘니 깜빡 잊고 있다가 편지 보고 생각나는 모양이라. 해인사 장경각에서 법문을 도매로 받아와 여기서 소매로 팔아먹고 살아. 그러니 한달살이지. 불경에 중 굶어 죽으란 법 없어요.”



살다가 괴로울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 비급 한 수 알려 달라 했다. “먼저 숨쉬기 운동부터 해야 돼요. 들숨날숨, 들숨날숨, 들이쉴 때 스으∽하고, 내쉴 때 후우∽하고, 자기가 숨 쉬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봐요. 지금 숨 들어간다, 나온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라” 한 5분 해보라 해서 해봤더니 잘 모르겠고 살짝 가라앉은 느낌은 든다. “들숨날숨 가만히 보고 있으면 멀리 떠돌던 잡념들이 내 안으로 돌아와요. 마음을 불러 몸 곁에 두는 거지. 몸과 마음이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거요. 매일 조금씩 해보면, 어느 날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욕심에서 한 발 벗어나는 거요.”



장경각에서 받아온 한소식이 이어진다.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데 해가 기울면서 산그늘이 내 몸을 서서히 덮더란 말이야. 그래 산이 내게 말을 거는구나, 하고 알았지. 산을 보고 한바탕 웃어줬어요. 한밤중에 고양이가 문을 긁는 것은 배고파서 그런 것이고, 파초 잎이 부르르 떠는 것은 바람 불고 곧 비가 온다는 거라, 들숨날숨 하고 있으면 알게 돼요. 그게 ‘지관(止觀)’이요.”



이 대목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온다. 싯다르타가 강가의 야자나무 이야기, 강물에 뛰어들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자 뱃사공 바주데바가 말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군요. 강이 당신에게 말을 건넸던 거예요. 강은 친구이며, 말을 건네는 거지요…” 강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제 흐른 것은 저 앞에 갔고, 오늘 흐르는 것은 여기 가고, 내일 흐를 것은 저 뒤에 오는 것 같지만 ‘강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산과 바다에서…강에는 현재만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어요.’





“지혜는 많이 배워서 나오는 게 아니요”





들숨날숨 하다보면 고요 속에 ‘지혜’가 생겨난다 하니, 불교의 삼학, 계정혜(戒定慧)의 ‘혜’다. “평생 중노릇에 결국 도달해야 할 곳은 ‘혜’지. 지혜는 많이 배워서 나오는 게 아니요. 내 것을 덜어낼 때, 내 몫을 덜 가질 때 나와요. 당장은 손해 같지만 나중에 돌아와. 삭히면 깊어지듯이. 지혜는 불쌍하다, 어쩔까나, 하는 자비심이 원천이요.”



수도승은 누구인가? ‘수도권에 사는 중이 수도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는 산중에서 홀로 무욕의 삶을 사는 스님이 아닌가 한다. ‘편하다’는 제목의 스님 자작시 한 수. ‘따뜻한 물 쓰기도 불편하고/ 화장실 가기도 불편하고/ 군불 넣기도 불편하고/ 산길 오르내리기도 불편하다/ 그렇게 불편을 오래 사용하다 보니/ ‘불’자가 떨어져 버렸다’



내 것을 덜어내라는 스님 법문이 참 묘하다. 하직삼배하면서 불전에 노란 지폐를 한 장 놓으려다 한 장을 더 놓았다. 산문 나서면서 물으니, 전 재산 2백만원 있다고 한다. 떠날 때 화장(火葬)할 돈이라 한다.



한겨레

이광이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는 소질이 없어 못 쓰고 그 언저리에서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머리가 많이 비어 호가 ‘반승’(半僧)이다.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와 책 ‘절절시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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