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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명령 불복종’도 배운다···시각장애인 안내견 도심 훈련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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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각장애인 안내견 ‘달다’가 박재만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와 함께 지난 23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훈련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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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경기 용인시 동탄호수공원 인근 건널목. 레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시민들 사이로 흰색 횡단보도 표식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생후 2년 차 견종의 이름은 ‘달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견습’ 안내견 약 1년의 훈련을 마치고 분양을 기다리고 있다.

달다는 매일 도심에서 훈련을 받는다. 지하철·상가·공원 등 최대한 여러 환경을 경험하는 게 목표다. 세계 안내견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 과정을 동행했다.

직선 보행 때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 훈련 난도가 올라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달다는 부딪히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살짝 틀었다. 이날 훈련을 맡은 박재만 훈련사는 “‘집중해서 30분 걸릴 길’을 안내견을 동반하면 10분 만에 가는 셈”이라며 “한 번 익숙해지면 사람이 안내하는 것보다 편하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달다! 개찰구 찾아.” 용인 에버라인 동백역 역사 안에서 훈련사의 말을 들은 달다가 개찰구 앞으로 걸어갔다. 달다가 명령을 따를 때마다 박 훈련사는 클리커(신호음을 내는 장치)를 한 번 울리고 사료를 달다 입에 넣어줬다. 보통 안내견이 익힐 수 있는 명령어는 60~70개 안팎이다. 박 훈련사는 “과거에는 물리적 훈육이 주로 이뤄졌다면 15년 전부터는 잘한 일에 보상을 주는 긍정 강화 훈련으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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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안내견 ‘달다’가 박재만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와 함께 23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역에서 지하철 게이트 통과 훈련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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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명령을 거스르는 훈련도 받는다. 안내견 훈련의 마지막 관문으로 꼽히는 명령 불복종 훈련이다. 박 훈련사는 “도로에 차가 지나다닐 때 ‘건너’라는 명령을 안내견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다양한 돌발 상황을 경험해보는 게 필수”라고 했다. 이날 달다도 훈련사의 말을 따르다가 높낮이 차가 있는 곳이 나오면 일단 걸음을 멈췄다.

국내에는 안내견 70~80마리가 활동 중이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는 1년에 안내견 15~16마리를 분양한다. 분양비는 무료다. 최근 반려동물 인식이 개선되면서 안내견 수요도 느는 추세다. 대기기간만 2~3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선 4주 정도 적응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훈련사들이 함께 숙식하며 시각장애인과 안내견 간 생활 방식을 맞춘다. 시각장애인이 청각 정보, 안내견이 시각 정보를 담당하는 식이다. 박 훈련사는 “이동은 안내견과 시각장애인 간 상호작용”이라며 “주인이 가는 길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값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청각 등 감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이 주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머지를 안내견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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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경향신문 기자가 23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서 안내견 ‘달다’와 박재만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의 도움을 받으며 시각장애인 안내견 보행체험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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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안내견과 함께 한 보행체험은 쉽지 않았다. 안대로 눈을 가린 다음 하네스(몸줄)를 손에 쥐고 달다에게 몸을 맡겨봤다. 눈을 가리니 가벼운 바람도 인기척 같았다. 훈련사가 “괜찮다”고 했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달다의 걸음이 보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박 훈련사는 “익숙해지면 계단을 올라가거나 장애물을 피하는 등 안내견과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다”며 “일종의 소통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네스만 잡고도 그날 안내견의 컨디션을 알 수 있다는 분도 있다”고 전했다.

음식점이 늘어선 번화가에 들어서자 달다가 코를 벌름거렸다. 보통 견종이라면 냄새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일 법도 한데 달다는 코만 킁킁거릴 뿐이었다. 사람이나 다른 견종이 다가와도 짖지 않았다. 박 훈련사는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땅에 박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팔면 위험한 상황이 된다”며 “이러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다고 출생 직후부터 훈련을 받는다”고 말했다. 본능을 억누르느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박 훈련사는 “어려서부터 규칙이 몸에 배어 있어 그렇지는 않다”며 “오히려 안내견의 평균수명이 일반견보다 길다”고 말했다.

약 1시간 정도 훈련을 마치고 차량으로 돌아온 달다는 물 한 접시를 벌컥거리며 먹었다. 꼬리도 이리저리 흔들었다. 훈련을 마쳤다는 걸 알고 긴장이 풀어진 것이다. 박 훈련사는 “최종 훈련까지 모두 수료하는 안내견은 30% 정도”라며 “올봄에 달다도 새 주인을 찾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시각장애’ 김예지 의원 가방 속을 들여다보다[인터뷰]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402091346001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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