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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평양 대사관 낸다면서…니카라과 "재정난에 주한 대사관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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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의 권위주의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왼쪽)과 부인이자 부통령 로사리오 무리요.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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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니카라과가 서울에 있는 주한 대사관을 폐쇄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에는 재정난을 이유로 설명했다. 다만 니카라과가 평양에는 대사관을 새로 내기로 하는 등 북한과 ‘반미 연대’로 전례 없이 밀착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24일 “최근 니카라과 정부는 재정 상황 악화로 인해 주한 대사관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우리 정부에 알려 왔다”며 “이에 따라 제니아 루스 아르세 제페다 주한 대사의 임명도 철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푸엔테스 콘피아블레스 등 니카라과 매체들은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주한 대사의 임명을 철회했다는 고시를 관보에 게재했다고 보도했다.

대사관 폐쇄는 외교 관계를 끊는 단교 조치는 아니다. 외교부도 “니카라과측의 비상주 대사관 겸임 대사 체제를 통해 한·니카라과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에 있는 주일 니카라과 대사관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겸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니카라과의 결정이 관심을 모은 건 북한과의 관계 때문이다. 양국은 지난해 7월 평양과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 대사관을 각기 다시 열기로 합의했고, 지난해 말 오르테가 정부는 주북 대사에 니카라과 좌파 정치 세력의 구심점인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출신 명망가를 내정했다. 이런 흐름 속에 니카라과가 한국을 동족이 아닌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규정하기 시작한 북한을 위해 한국과 외교관계를 축소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재정 상황 악화가 금번 조치의 주된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과의 연관성에는 선을 그었다. 또 “최근 니카라과 정부는 독일 대사관, 미국 영사관(텍사스·캘리포니아·뉴올리언스·루이지애나), 멕시코(타파출라)·영국·과테말라 영사관 등 다수의 해외 공관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니카라과는 지난해 7월 관영매체를 통해 북한과 상호 상주 대사관 개설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대사 파견 등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니카라과는 재정 문제로 한국 공관을 폐쇄한 적이 있다. 1997년 5월 문을 닫았던 주한 니카라과 대사관은 2014년 10월 다시 개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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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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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거 한국과 니카라과의 관계가 부침을 겪을 때는 재정 문제 외에 북한과 니카라과 간 외교 관계와 연동되는 경향도 보인 게 사실이다. 한국은 1962년 니카라과와 수교했지만, 79년 니카라과의 좌파 정치 세력인 FSLN이 주도한 좌파 혁명으로 사회주의 과도 정부가 집권하면서 외교 관계가 동결됐다. 반면 같은 해 니카라과에는 북한의 상주 대사관이 개설됐다.

FSLN을 대표하는 오르테가는 1985~90년 첫 임기 뒤 실각해 90년 중도 우파 비올레타 차모로에 정권(90~97년)을 내줬는데, 95년 나카라과는 한국에 상주 대사관을 열었다가 97년에 재차 폐쇄했다. 북한은 반대로 니카라과 우파 정부 때인 95년 현지 대사관을 폐쇄했고, 주쿠바 북한 대사관이 업무를 겸임했다.

인구 661만의 니카라과는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대표적인 반미 노선 국가로 꼽힌다. 특히 오르테가는 2021년 대대적인 야권 탄압으로 5선 가도에 오른 인물로, ‘중남미의 북한’을 꿈꾸며 종신 집권을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2007년부터 네 차례 대선에서 승리했다. 직전 대선에선 주요 야권 대선 주자들을 무더기 투옥하고, 각종 연구소·대학 등 민간 기관 수백 곳을 폐쇄하면서 서방에서 독재 국가로 낙인 찍혔다.

북한은 2017년 최룡해 국무부위원장을 오르테가의 네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 보냈고, 지난해 7월 지난해 7월 산디니스타 혁명 44주기를 맞아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축전을 오르테가 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이에 오르테가의 부인이자 부통령인 로사리오 무리요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보낸 형제 김정은”이라며 화답했다.

‘형제의 나라’ 쿠바가 지난 2월 한국과 전격 수교한 것이 북한이 중남미에서 ‘또 다른 형제’ 니카라과를 더욱 끌어당기도록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다. 외교적 일격을 맞은 북한은 ‘쿠바 충격파’를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수교 소식이 한국 언론에 알려진 지 하루 만인 14일 밤 북·일 정상회담 ‘군불’을 떼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기습 담화로 불안정한 속내를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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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맞이하고 있다. 당시 디아스카넬 의장이 북한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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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니카라과 간 관계 개선이 1970~80년대 이뤄진 군사·인적 교류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 CIA 기밀 해제 문건 등에 따르면 북한은 70년대 말 산디니스타 군 장교들에게 군사 훈련을 제공하는 등 물밑에서 지원했다. 오르테가는 첫 임기 때인 1986년 평양으로 들어가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다.

이는 러시아·중국·이란 등을 주축으로 한 ‘반미 권위주의 사슬’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2021년 11월 오르테가가 유력 야권 대선주자들을 줄줄이 투옥한 채 대선을 치러 5선에 성공하자, 미국은 곧바로 오르테가를 비롯한 유력 인사들에 대해 비자 제한 조치 등 무더기 제재를 발표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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