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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군비는 정말 GDP 성장에 기여하는가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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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전 세계는 군비 경쟁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등 두개의 전쟁이 진행 중이고, 이스라엘과 이란이 세번째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남아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군비 경쟁이 가능한 건 '군비'가 국내총생산(GDP)에 집계돼 경제성장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GDP 개념을 확립한 경제학자의 생각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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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전투기 KF-21이 지난해 열린 '서울 아덱스 2023' 개막식에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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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폭증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 22일(현지시간) '2024 세계 군비 지출 동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전 세계 군비 지출은 전년보다 6.8% 증가한 2조4430억 달러로 SIPRI가 통계를 발표한 1988년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해 세계 군비 증가율은 9년 연속 상승하면서 2009년 이후 가장 높았다.

미국이 지난해 군비로 9160억 달러를 사용해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이 2960억달러로 2위, 러시아가 1090억 달러로 3위였다. 일본이 502억 달러로 10위, 한국이 479억 달러를 기록해 11위에 위치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군비는 648억 달러로 8위지만, 미국 등 해외 군사원조 254억 달러를 더하면 900억 달러대에 달했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당대 초부유 국가를 만들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 등에 막대한 대출과 군수물자를 제공해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올라섰고, 이를 기반으로 압도적인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한국전쟁 기간엔 미군의 후방 병참기지이자 보급품 생산기지 역할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받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1950~1973년 연평균 9.29% 성장해 직전 같은 기간(2%대)보다 5배 가까이 더 성장했다.

전시의 군비가 특정 국가에 부를 몰아줬다면, 평시의 군비 증가는 어떤 경제 효과를 가지고 있을까. 기본적으로 무기‧보급물자 등 모든 생산품의 가치는 GDP에 포함된다. 한국국방연구원은 2015년 국방비 예산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2015년 국방비 지출의 생산유발액은 48조3458억원, 부가가치유발액은 26조4669억원으로 GDP의 1.62%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또 "방산물자 국산화율 상승이 국방비의 경제적 효과를 더 크게 한다"며 "국방연구개발에 의한 핵심기술 개발은 방산수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대로 우리나라 방산수출은 최근 10년간 연간 20억~30억 달러에 머물다가 2021년 73억 달러,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약 150억 달러로 급증했다.

하지만 국회예산처가 2005년 발표한 '국방비의 경제 연관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평시의 군비 증가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줬다는 주장들은 그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었다. 보고서는 "개발도상국가에서 국방 부문은 외부효과 및 기술적 파급효과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인적 자원 개발에 기여하지만, 선진국에서는 국방 부문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오히려 민간 부문으로의 자원 배분을 흡수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결론내렸다.

GDP 표준을 만든 사람조차 군비 포함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1937년 미국 의회에 제출한 '1929~1939년 국민소득'이라는 보고서에서 GDP 집계의 표준을 제시했다. "GDP는 한 나라 영토 내에서 일정 기간에 생산된 모든 최종생산물과 서비스의 시장가치의 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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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즈네츠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인 1941년 GDP 추정치를 발표하면서 각주에 "가치가 없거나 심지어 해로운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전투함·폭격기·독가스·의약품 생산은 모두 GDP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쿠즈네츠는 "큰 회사들이 운영하는 민간 경비원들의 활동이 생산적이라면, 왜 국내 경찰이나 국제경찰 혹은 한 국가의 무장 군대 활동이 생산적이 아니란 말인가"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지만 쿠즈네츠는 전쟁 중인 1945년에 군비 의견을 수정했다. 그는 "전쟁 기간에는 군비 지출을 GDP에 포함해야 하지만, 평시의 군비 지출은 실제로 누군가에 의해서 소비되지 않기 때문에 중간재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미국 상무부는 평시의 군비를 GDP에서 제외하자는 원안자 쿠즈네츠의 말을 무시했다.

올해 우리나라 국방 예산은 59조6000억원으로 4년 전보다 20% 증가했다. 만약 GDP에서 군비를 제외했다면, 그래서 군비가 증가할수록 GDP가 줄어든다면, 지금과 같은 군비 경쟁의 시대가 오지 않았을 수 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3월 캔자스대학 연설에서 "GDP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감옥, 자연 파괴, 네이팜탄, 핵탄두와 장갑차가 모두 포함된다"며 "그러나 GDP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공무원의 청렴성, 조국에 대한 헌신을 측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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