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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중동 확전 땐 ‘오일쇼크’ 비화…금리 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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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고물가·고금리 ‘퍼펙트스톰’ 경고등


한국 경제가 ‘시계제로’ 한복판에 들어섰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중동 일대 지정학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4.6%를 터치하더니 금·은 가격은 신고가를 갈아치운다. 이 모든 이벤트가 단 하루 만에 빚어졌다. ‘퍼펙트스톰(복합위기)’ 전조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중동 위기가 ‘오일쇼크’로 비화할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도 인플레이션과 통화 정책 불확실성 확대로 한국 경제가 복합위기의 덫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환율 상단 1400 위로

중동발 불안 심리 확산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 소식이 알려진 직후 지난 4월 15일. 서울 외환 시장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외환 시장 개장과 동시에 치솟아 3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갈아치웠다. 4월 16일에도 개장과 동시에 ‘원화 팔자’ 주문이 쏟아졌다. 이날 서울 외환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400원을 터치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까지 오른 것은 2022년 11월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1400원대 환율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 고강도 긴축기 등 3차례뿐이다. 환율은 외국 통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상대적 가치를 보여준다. 자국 통화(원화) 대비 외국 통화(달러) 강세가 두드러지거나, 외국 통화 대비 자국 통화가 약세를 보일 때 환율(원·달러)은 상승한다. 작금의 원·달러 환율 상승은 한국 경제 기초체력 저하에 따른 원화 약세보다는 달러 강세 현상이 두드러진 결과라는 게 지배적 시각이다.

금융 시장에선 이란과 이스라엘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위험 회피 심리를 고조시킨다고 본다. 이란과 이스라엘 양측 모두 확전은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놨지만 금융 시장은 살얼음판을 걷는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역내 전쟁을 촉발하지 않으면서도 이란에 ‘고통스러운 보복’을 하는 여러 방식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중동 불확실성은 확산 일로다.

외환 시장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당국은 구두 개입에 나섰다. 외환당국은 지난 4월 16일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지나친 외환 시장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달러 강세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동 시나리오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재차 1400원 선을 돌파할 가능성을 열어둔다. 시장과 전문가들은 중동 지정학 시나리오를 위험 수준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본다.

현재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의 위험 수준은 ‘중립’이다.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에 대해 국지적 보복을 가하면서 국제사회와 연대해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오는 11월 미 대선 전까지 긴장 국면이 이어지겠지만 과거 ‘오일쇼크’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산유국은 아니므로, 국지적 도발이 이어지더라도 국제유가 시장에서 공급 충격이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는 논리다. 중동 긴장 고조에 따른 원자재 가수요 확대로 단기적 유가 상승은 피할 수 없겠지만 상승폭은 제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워스트 시나리오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경우다. 현재로서는 가능성 낮은 시나리오로 평가되지만 이 경우 세계 에너지 시장은 큰 혼란에 빠져 ‘공급쇼크’로 비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중동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전할 경우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 일대 봉쇄 가능성이 커진다. 두 해협은 세계 물류 핵심 항로다. 특히 산업계에서는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 일대 봉쇄를 우려한다. 홍해는 희망봉을 통한 우회가 가능한 반면, 호르무즈 해협은 우회로가 마땅찮다. 세계 원유의 20%, 액화천연가스(LNG) 3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가운데, 이 물동량의 대부분이 아시아로 향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 충격이 현실화할 경우 세계 에너지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달을 수 있다.

다만, 최악의 경우로 치닫더라도 과거 오일쇼크 재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과거 1·2차 오일쇼크와는 거시경제 여건부터 구분된다. 1차 오일쇼크(1973~1974년)에 앞서 미국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장기화로 군비 조달을 위해 달러를 무차별적으로 찍었다. 달러 가치 하락, 재정 적자, 고물가 압력 등이 상수가 됐던 때다. 이 와중에 산유국 정세 악화로 1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경기 둔화 속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2차 오일쇼크 직전에도 미국 연준의 오판으로 통화량이 초과 공급에 놓였다. 당시 미 연준은 제1차 오일쇼크로 물가가 급등하자 기준금리를 연 11%까지 올렸지만 그 이후 경기를 살리려 잠시 금리를 낮췄다가 제2차 오일쇼크가 덮쳤다. 결국 경기는 살리지 못하고 물가만 다시 크게 오르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1·2차 오일쇼크의 경우 산유국 정세 악화에 따른 유가 급등 이전 통화 유동성 확대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며 “중동 사태가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3차 오일쇼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짚었다.

마지막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스라엘과 이란 간 평화 협정 체결로 중동 갈등이 조기 진화될 경우다. 국제유가는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고 환율과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우려도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평이다. 주요국 제반 사정과 이해관계가 모두 달라서다. 미국은 국제유가 안정을 위한 비축유 방출 카드를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소진한 데다 대선을 앞두고 있다. 중재자 역할을 하기에는 운신의 폭이 좁다. 전시 내각을 구성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쟁을 통해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내부 정치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부담 요인이다. 미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전시 각료 다수가 이란 보복에 찬성표를 던진 것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한국 증시는 당분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중동 갈등 우려 속 4월에는 배당 시기를 맞아 외국인 배당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경향이 있는 점도 환율 상승을 부추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강달러 압력 확대와 함께 외국인 배당금 지급에 따른 달러 수요가 더해져 원화가 기록적 약세다”라며 “중동 갈등이 확전으로 치달을 경우 환율 상단으로 1440원을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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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키 인플레’ 심화

환율·물가·금리 불확실성 더욱 커져

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환율, 물가, 금리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환율, 물가, 금리 등은 상호 연관성이 깊다. 자국 통화량 증가는 장기적으로 환율 상승 효과(자국 통화 약세·외국 통화 강세)를 낳는다. 이는 자국 통화 가치 저하를 초래해 금리(이자율) 하방 압력이 커진다. 환율 움직임은 물가와도 직결된다. 환율 하락은 수입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국내 물가를 일정 수준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 상승을 부추겨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먼저 물가다. 중동 불안까지 덮쳐 물가 예측 경로는 더욱 고차방정식이 됐다. 시장과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라진 거시경제 여건으로 인플레이션 완화 경로가 ‘울퉁불퉁(Bumpy)’한 패턴을 보일 것으로 본다. 인플레이션이 과거처럼 예측 가능성 높은 선형 패턴의 경로가 아니라, 요철처럼 등락을 반복하는 불규칙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 세계 경제 ‘폴리코노미(Politics+Economy)’ 현상이 두드러진 점도 ‘스티키 인플레이션(끈적한 물가)’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폴리코노미는 경제가 정치에 휩쓸리는 현상을 뜻한다. 선거를 앞둔 주요 정당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돈 풀기 경쟁에 나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경제의 정치화’ 현상이 짙어지면서 스티키 인플레 우려는 외려 더 커진다.

강달러 파급 효과 역시 크게 두 갈래다. 미국의 경우 달러 강세 심화로 수입 물가가 낮아져 자국 물가 안정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한국처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개방 경제 국가에는 악재다. 달러 결제 시 원화를 더 많이 써야 하므로, 수입 물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 과거처럼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가격 경쟁력 강화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대부분 제조업 생산기지가 미국과 유럽 등 현지 완결 체계를 갖춰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가격 경쟁력 강화 효과는 거의 사라졌다는 평가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 달리, 경제 성장이 둔화한 가운데 수입 물가마저 오를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단 진단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은 쑥 들어갔다.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한 데다 최근 3달간 물가 지표마저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중동 정세 불안을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상당 기간 달러 강세·원화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고강도 긴축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의 소비·고용은 끄떡없다. 최근 목격된 일련의 지표에서는 성장과 고용 모두 호조세가 뚜렷하다. 지난 3월 발표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경제전망요약(SEP)에 따르면 성장률 전망(1.4% → 2.1%),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 전망(2.4% → 2.6%), 실업률 전망(4.1% → 4%) 등은 연착륙 기대감을 높인다.

긴축에도 불구하고 미국 소비·고용이 견고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첫째,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부동산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상당 수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진행됐다. 여기에 부동산대출 대부분이 팬데믹 직후 저금리 수준에서 고정금리로 묶여 있다. 덕분에 금리 상승에도 미국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크게 높지 않아 가처분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둘째,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고용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정부가 풀고 있는 막대한 재정은 긴축 효과를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반도체법(Chips Acts) 시행으로 세계 각지에서 미국으로 몰려드는 투자와 조 바이든 행정부 재정지출은 미국 경기 확장을 견인한다.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려놨는데, 확장 재정이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정이 이렇자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으로 기존 정책 입장을 선회했다. 그는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파월 의장의 오락가락 물가 인식이 통화 정책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거세다. 올 들어 3달간 물가 지표가 예상과 달리 높게 나오자 금융권에서는 연준 통화 정책의 매파적 면모가 강해질 것으로 봤다. 반면, 파월 의장은 최근까지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지속된다는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SEP에서는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소폭 상향했으면서도 금리 인하 전망 중간값(Median)을 3회로 유지했다. 성장률 전망을 0.7%포인트 조정해 잠재성장률 수준 위로 올려놨으면서 금리 인하 속도를 바꾸지 않은 것을 두고도 파월의 물가 인식에 관한 의구심을 키웠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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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선 금리 상승 전망도

美 천문학적 국채 이자 부담

이미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 ‘노랜딩’ 시나리오의 양면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확산한다. 미국 경제가 견고한 가운데 중동 불안까지 겹쳐 스티키 인플레이션이 심화할 경우 고금리 지속에 따른 달러 강세 현상은 더 심화할 수 있다.

노랜딩 시나리오는 양면성이 있다. 경기 침체를 피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립금리 상승을 초래해 2%대 근원물가를 유지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어서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과열되거나 침체되지 않고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도록 하는 금리다. 실질 중립금리는 명목 중립금리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뺀 것. 각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 적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쓴다. 즉, 경제 구조적 요인 변화로 실질 중립금리가 높아지면 인플레이션율이 각국 중앙은행 목표치인 2%로 떨어지더라도 이상적인 경제를 가능케 하는 금리 수준이 이전보다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월가에서는 벌써부터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UBS는 최근 투자 메모에서 “경기 확장세가 탄력적으로 유지되고 인플레이션율이 2.5% 이상에서 굳어진다면 내년 초부터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재개해 내년 중반 연 6.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투자은행 역시 금리 인하 기대를 속속 낮추고 있다.

다만, 고금리가 지속되는 것은 미국 재정에도 막대한 부담을 안긴다.

미 재무부 입장에서는 이대로 고금리가 수년 지속될 경우 국채 이자를 내는 데 예산을 소진하고 최악의 경우 ‘재정 절벽’을 마주할 수 있다. 기축통화국으로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무한정 찍는 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다. 달러를 찍어내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수입 물가를 자극해 다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부메랑’을 맞는다. 미 재무부 입장에서는 장기 국채금리를 조기에 안정화하고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차선이다.

이미 미 정부 이자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미 의회 산하 재정분석기구 의회예산처(CBO) 등에 따르면, 올해 미국이 정부 부채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이자 총액은 8700억달러(약 116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 각국 국방 지출액 가운데 가장 많다는 미국 국방예산 8500억달러(약 1135조원)를 뛰어넘는다. 미 정부 이자 비용이 국방비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 과거 저금리 시절 발행한 장기 채권 비중이 높지만, 2022년 긴축 본격화 이후 발행한 고금리 국채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미 정부 재정에 지속적인 부담 요인이다. 최근 미 재무부가 “단기 국채 비중을 15% 안팎 유지하라”는 TBAC(국채차입자문위원회·Treasury Borrowing Advisory Committee) 권고에도 불구하고 단기채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은 고금리에 따른 장기 국채 이자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6호 (2024.04.24~2024.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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