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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정체불명 흰색 가루” 의심 신고 36분 만에 ‘검사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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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테러 막는 인천공항-질병청

인천공항 현장대응팀 24시간 가동… 탄저균-페스트균 등 20분 내 탐지

질병청과 실험실 네트워크로 협업… 현장서 음성 나온 검체도 정밀 분석

토양 등 환경 검체 감시-백신 개발

동아일보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소속 생물테러 현장대응 요원들이 모의훈련을 하고 있다. 인천공항검역소는 ‘생물테러 대응 실험실 네트워크’에서 현장 대응을 맡는 기관이다. 현장에서 간이 검사를 진행한 후 정밀 검사를 하기 위해 검체를 상위 기관으로 보낸다. 인천=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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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여객터미널 2층 은행 앞 쓰레기통에서 생물테러 의심 물질 발견, 즉시 출동 바랍니다.”

18일 오후 2시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사무실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공항 대테러상황실(TCC). 환경미화 직원으로부터 “쓰레기통 주변에 흰색 가루가 쏟아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검역소에 현장 검사를 요청한 것이다.

공항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이면서 국가 기반시설이다. 공항 내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란 곧 생물테러 의심 상황을 뜻한다. 탄저균, 두창바이러스 등 생물 테러에 사용되는 물질이 대부분 흰색 가루다.

전화를 받은 검역소는 즉시 생물테러 현장대응팀을 출동시켰다. 현장대응 요원들은 신고 접수로부터 15분 만인 오후 2시 15분 산소통이 부착된 최고 등급의 ‘레벨A’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 도착했다.

● 출동 즉시 현장에서 생물테러 탐지

현장에 도착한 대응요원들의 첫 임무는 공항 이용자들이 수상한 물질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요원들은 발견된 흰색 가루 주위에 차단선을 설치한 뒤 ‘생물테러 병원체 및 독소 다중 탐지 키트’를 꺼내들었다. 이 장비를 활용하면 생물테러에 주로 사용되는 △탄저균 △두창바이러스 △페스트균 △야토균 △보툴리눔균 △리신독소 △황색포도알균 △유비저균 △브루셀라균 등 9가지 병원체와 독소를 20분 안에 탐지해 낼 수 있다.

탐지 키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에게 익숙해진 자가검사 키트와 유사한 구조지만 시약을 뿌리는 칸이 총 9개다. 현장대응 요원들은 조심스럽게 흰색 가루를 채취해 즉석에서 시약을 만들고 각 칸에 시약을 5방울씩 떨어트렸다. 키트가 시약에 반응해 두 줄을 보이면 양성, 한 줄을 보이면 음성이다.

오후 2시 36분. 신고 접수 36분 만에 검사가 끝났다. 결과는 모두 음성. 검사를 맡은 현장대응 요원은 9칸 모두에 1줄이 선명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한 후 머리 위로 양팔을 들어 엑스자를 그려 보였다. 현장을 통제하며 검사를 보조하던 다른 요원도 따라서 엑스자를 그렸다. 레벨A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선 요원들 간 대화가 원활하지 않아 수신호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한다. 현장대응 요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호복 속으로 보이는 요원들의 얼굴에선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현장검사 후 실험실 보내 정밀검사

이날 상황은 생물테러 의심 신고 접수를 가정한 모의 훈련이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인천공항에선 통상 일주일에 1건꼴로 실제 생물테러 의심 신고가 접수된다. 인천공항검역소는 생물테러 대비·대응 실험실 네트워크(LRN) 소속의 ‘레벨 A’ 기관으로 생물테러에 대비해 3인 1조의 현장대응팀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전국 13개 공항 항만의 검역소와 지방자치단체별 보건소 등이 레벨 A 기관에 해당한다.

검역소 차원에서 수행한 현장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공항은 즉시 테러 대응 태세로 전환된다. 출입국장에 있는 전체 직원과 이용객들을 공항 밖으로 대피시키고, 군과 소방당국이 출동한다. 공항에는 제독소와 진료소가 설치되고 환자가 발생한 경우 병원으로 이송한다. 검역소와 방역 당국은 접촉자 등을 대상으로 역학조사에 착수한다. 현장대응팀은 정밀 분석 검사를 위해 검체를 수집해 상위 등급 실험실로 보낸다.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자가검사 키트로 먼저 간이 검사를 한 뒤 유전자증폭(PCR) 검사로 ‘확진’ 판정을 받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현장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더라도 현장대응팀은 검체를 삼중수송용기에 담아 질병관리청 산하의 권역별 질병대응센터와 시도 보건환경연구원, 국방부 유관기관 등의 ‘레벨 B’ 실험실로 보낸다. 유전자 검출 및 배양 검사를 통해 보다 정밀하게 검사 결과를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날 검역소 현장대응팀은 수도권 질병대응센터로 검체를 이송했다.

이 센터 진단분석과 김영지 주무관은 “전달받은 검체는 독성을 없애는 ‘불활화’ 과정을 거친 뒤 감염 방지를 위한 생물안전작업대로 옮겨 성분 검사를 한다”며 “생물테러 의심 상황이 발생하면 전 직원에게 즉시 문자로 통보돼 24시간 검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장검사에서 보툴리눔균이나 리신 등에 양성 반응이 나온 경우는 바로 최고 등급(레벨 C)인 질병청 고위험병원체분석과 실험실에서 정밀 검사가 이뤄진다.

● 생물테러 대비 백신-검사법 개발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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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기관인 질병관리청 고위험병원체분석과의 실험실 모습. 질병관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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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청이 레벨 A∼C 기관으로 구성된 실험실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건 생물테러 의심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원인 병원체를 신속하게 감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테러 의심 상황 대응뿐 아니라 토양 등 환경 검체에 대해 이뤄지는 연 1만 건 내외의 생물테러 병원체 환경 감시 검사도 실험실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실험실네트워크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질병청은 고위험 병원체에 대한 진단검사 체계를 개선하고 신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연구는 국민 건강과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보니 민간 기업 차원에서는 시도하기 어렵다. 질병청은 최근 녹십자와 함께 세계 최초의 재조합단백질 기반 탄저백신을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하기도 했다.

인천=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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