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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美-중동 석유공룡도 뛰어든 플라스틱… 역대급 공급과잉 우려[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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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업계 잇단 증설 비상등

中 공격적 증설로 초과 공급 이어

셸-엑손모빌, 사우디 아람코 등 석유 대안으로 플라스틱 공장 설립

값 떨어져 공장 가동 80% 밑돌아… “향후 5년간 암흑기 이어질것” 전망

불황에 빠진 화학업계에 역대급 공급 과잉 폭풍이 몰아친다. 중국만이 아니라 미국 중동의 대형 석유기업까지 플라스틱 공장 증설에 뛰어들어서다. 통상 3∼4년이던 경기 사이클이 사라지고, 앞으로 5년 동안 암흑기가 이어질 거란 우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 2028년까지 이어질 공급 과잉

플라스틱 소재를 만드는 국내 화학업계는 불황의 한복판에 있다. 2021년 정점을 찍은 실적이 하락세를 타면서 올해 들어 주가도 급락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역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학은 대표적인 경기순환업종이다. 3∼4년 주기로 업황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지금의 부진엔 중국 영향이 크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중국의 플라스틱 수요가 꺾였다. 동시에 2019년부터 중국이 공격적으로 플라스틱 공장 증설에 나서면서 공급 과잉을 부추겼다. 올해 말이면 중국은 자체 소비량의 105%에 달하는 충분한 플라스틱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수요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신한투자증권 이진명 애널리스트는 “부양책 효과로 최근 중국 경기가 저점을 통과하면서 수요 회복 기대감이 커진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공급이다. 2028년까지 계획된 증설 물량이 역대급이다. 이를 주도하는 건 중국만이 아니다. 미국·중동의 대형 석유기업이 앞다퉈 플라스틱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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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회사 셸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짓고 있는 플라스틱 생산 공장. 2022년 11월부터 단계적으로 열고 있는 이 공장은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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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회사 셸은 2022년 11월부터 단계적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폴리에틸렌 단지를 열고 있다. 올해 말 완공되면 축구장 300개 크기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미국 기업 엑손모빌은 중국 광둥성에 총 100억 달러를 투자해 건설 중인 석유화학 단지를 2025년 완공한다. 셰브론은 지난해 합작사인 셰브론필립스케미컬을 통해 미국 텍사스주와 카타르에 대형 화학 플랜트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도 플라스틱 야망을 키운다. 지난해 사우디 주베일에 초대형 석유화학 단지 ‘아미랄’을 착공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사우디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약 3분의 1을 플라스틱 생산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 “이것이 석유화학 뉴노멀”

석유공룡들이 일제히 플라스틱 공장 증설에 뛰어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휘발유 시대가 저물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JP모건은 내년이면 전 세계 휘발유 수요가 정점을 찍고 내년부턴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대형 석유회사는 플라스틱으로 눈을 돌렸다. 플라스틱 수요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이 2019년(4억6000만 t)의 약 3배인 13억2000만 t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인도 같은 신흥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자동차 경량화, 택배 물량 증가도 플라스틱 사용을 부추긴다.

플라스틱의 98%는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 미국과 중동은 원료 확보가 쉽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다. 화석연료 수입에 의존하는 유럽·아시아 기업보다 비용 경쟁력에서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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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플라스틱 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2019년 80%대 후반이던 전 세계 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80%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에 대규모 증설까지 더해진다니 암울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미국 경제매체 배런스는 “덩치 큰 사람이 대포 쏘듯이 작은 욕조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평했다.

원자재시장 분석기업 ICIS는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공장 가동률이 올해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수요가 회복돼도 2028년까지 설비 가동률은 70%대에 머물 거란 전망이다. 플라스틱 산업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깊고도 긴 공급 과잉 위기다. 존 리처드슨 ICIS 컨설턴트는 “시장이 사상 최고 수준의 공급 과잉에 직면했다”면서 “이것이 석유화학의 뉴노멀”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최소 수년간은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플라스틱 생산 급증은 화학업계뿐 아니라 환경에도 재앙이다. 새 플라스틱 가격이 뚝뚝 떨어지면서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이 경제성을 잃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밀도 폴리에틸렌 새 제품 현물가격은 t당 943달러, 재활용 가격은 1631달러였다. 2019년엔 재활용 가격이 더 저렴했지만 이후 역전돼 격차가 벌어졌다.

재활용 플라스틱 비중을 늘리겠다고 공언했던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은 비용을 이유로 약속 이행을 머뭇거린다. 세계 재활용 관련 기업 모임인 세계재활용기구(BIR)에 따르면 최근 중국과 유럽에선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업체 중 사업을 접거나 생산량을 감축하는 곳이 속출한다.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추진력이 순수 플라스틱의 저렴한 가격으로 타격 받았다”고 BIR은 지적한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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