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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비서실장 때 대통령에 직언” 지인·후학들이 회고하는 노재봉 前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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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24일 노 전 총리 지인 등에 따르면 노 전 총리는 1년 전 발병한 혈액암이 악화해 전날 오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사진은 지난 2008년 4월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 열린 '건국 60년, 60일 연속 강연'에서 강연자로 나선 노재봉 전 국무총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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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前 국회의원] 비서실장 때 대통령에게 직언… 수석들 의견 조정 역할도 충실

노재봉 전 총리는 내가 노태우 대통령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통령에게 청와대 바깥 상황을 명확하게 얘기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딱 잘라서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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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총리는 비서실장 시절 힘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했다. 고인은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도기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수행했다. 소신도 있었다. 사회 각계에서 분출하는 민주화와 사회 개혁 요구를 힘으로 억누르지 않고, 대통령에게 여론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노 전 총리는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교수 출신답게 평소에 생각한 걸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대통령 특보를 거쳐 비서실장으로 임명돼 대통령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얘기를 대통령에게 다 했다. 수석들의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도 충실히 잘한 비서실장이었다.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창설 주도한 이용희 교수 학맥 이어

조선일보

노재봉 전 총리는 서울대 외교학과 창설을 주도한 동주(東洲) 이용희(1917~1997) 교수의 ‘동주 국제정치학’을 계승한 학자이자 이 교수의 학맥을 이은 수제자였다. 노 전 총리의 제자인 나는 3대쯤 된다. 노 전 총리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국제정치 현실을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기여를 했다. 또한 미국에서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토크빌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서 서양 정치사상을 제대로 자리 잡게 한 학자였다고 평가해야 한다.

그는 국제정치학을 한국에 뿌리 내리면서 ‘강대국 위주의 정치 현실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에 대해 고민했다. 21세기에는 과거 19세기와 20세기 외세의 침략 앞에서 유효했던 ‘저항적 민족주의’를 넘어선 ‘전진적 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국제 질서의 변화, 과학기술의 발달, 환경 문제의 대두 등에 부응할 수 있는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10년 가까이 매주 공부 모임… 자유민주주의 전복 위험성 강조

조선일보

노재봉 전 총리는 은퇴 뒤에도 나를 포함한 제자, 학자들과 함께 공부 모임을 만들어 지식사회의 플랫폼을 꾸준히 운영했다. 2013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 ‘목요공부방’ 모임을 열었고, 병상에 눕기 전인 2022년까지 계속했다. 이 모임은 한 주도 쉬지 않고 진행됐는데, 우리가 부딪히는 대내외적 시사 문제에 대해 사상적·국제정치학적 분석을 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모임이었다.

노 전 총리는 모임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생활 양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늘 “전체주의의 전복 전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성인들이 불철주야 연구해 시대의 문제점을 올바로 읽어내고 대안을 마련해 국민을 이해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초동 연구실에 방문했을 때마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었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리=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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