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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조미료와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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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전호제 셰프. ⓒ News1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한창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50대였던 어머니는 "우리 집은 조미료를 안 쓴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조미료 대신 좋은 재료로 맛을 내니 건강식이라는 자부심으로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셨다.

어머니는 매년 김장철이 되면 동네 친구분들과 품을 나누곤 했다. 그때가 되면 집마다 김치를 조금씩 나누어 먹었는데 집마다 간과 맛이 다 달랐다. 쓰는 젓갈과 고춧가루의 종류에 따라 맛을 좌우하기도 했다. 어느 집 김치는 유독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김치 맛이 조금 떨어져도 젓갈과 생새우를 듬뿍 넣었다. 육수는 멸치와 양파를 넣어 많이 끓여두었다가 국물 요리에 사용하였고 매운탕에도 재료 자체의 맛을 내곤 했다. 좀 밍밍하여도 건강한 음식이라는 마음으로 감사히 먹었다.

그러던 주방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70대 후반이 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조미료를 사 오신 것이다. 맛이 부족할 때마다 조금씩 넣기 시작하셨다.

요즘은 음식에 간을 보시던 것도 이제 나에게 맡기신다. 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불고기를 재우면 너무 싱거운 적이 많아서 내가 단맛과 짠맛을 보충하곤 했다. 해파리냉채에도 어머니가 초벌로 무치면 내가 부족한 신맛과 단맛을 알려드리곤 했다.

단지 내 개인의 경험이라고 여겼지만 이와 관련된 기사를 읽고 놀라게 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50대에 가정식에서 조미료의 비중이 44.3%에서 80대에는 82.2%로 많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미각이 무뎌지고 식욕이 떨어져 조미료 사용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집밥과 다른 외식은 어떨까? 사회생활을 하면 하루 한 두 끼는 집 바깥에서 해결하게 된다. 내 경우에는 주방일을 시작하면서 거의 두 끼는 식사를 레스토랑 주방 뒤쪽의 작은 회사 식당에서 해결하였다.

양식을 만드는 주방에서도 직원들은 한식으로 식사를 제공하였다. 그러다 보니 직원식사와 주방 설거지를 함께 도맡아하는 주방이모가 계셨다. 주방이모는 자신만의 양념통을 준비해 두고 매일의 식사를 준비한다.

음식 재료는 메뉴에 쓰이는 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고 다듬다 남은 부분도 쓰는 식으로 버리는 재료가 없게 한다. 그 외에 한식 재료는 따로 주문하였다.

내가 일했던 이태원의 한 프렌치 식당에서는 어느 직원보다 연차가 높은 이모님이 계셨다. 이분은 실제 백반집을 운영하시던 경험의 소유자로 매번 맛있는 집밥을 만들어주셨다.

밥은 매번 따뜻하게 갓 지어 나왔고 생선구이, 그날 만든 무침이나 생김치가 빠지지 않았다. 이분의 주방을 보면 다른 재료 한쪽에 3㎏짜리 조미료에 수저가 꽂혀 있었다. 맛 비법의 한 부분이지만 도무지 어디에 조미료가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딱 간이 맞았다. 이분 덕택에 직원들은 땀나는 주방일을 버틸 수 있었다.

요즘 어머니는 배우 류수영의 요리 프로를 보고 음식을 만드신다. 탁자 위 신문의 빈자리에는 큼지막하게 요리 재료와 비율이 적혀 있었다. 이날 이후 평소 조금 밍밍하던 생선조림은 단짠이 조화로운 남대문 유명음식점의 메뉴처럼 변했다.

이제 집밥은 적은 양을 만들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식사 준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도 없지만 매번 외식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조미료를 꼭 써야 경우와 적당량을 알고 소비하는 것이 집밥을 지키면서 건강과 영양을 유지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예전의 어머니들처럼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을 것이다. 집밥과 외식 사이의 갈림길에서 집밥의 생존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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