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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4월보다 화사했던 ‘푸르른 철도 추억’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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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의 작은 박물관 ㊵ 노원구 공릉동 노원기차마을, 화랑대역사관, 노원불빛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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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기차마을 스위스관. 마터호른 봉우리와 인터라켄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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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풍경 축소모형’ 노원기차마을

엄마·아빠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

경춘선 ‘서울 최종 역’이었던 화랑대역

오래됐지만 빛나는 그때 모습들 담아


화랑대철도공원은 4월보다 화사하고 5월보다 푸르다. 실제의 87분의 1로 축소한 스위스 여러 건축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그 사이로 축소모형 기차와 자동차, 자전거가 달린다. 노원기차마을 스위스관에서 노는 아이들 눈이 별처럼 빛난다. 옛 경춘선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화랑대역사는 지금은 등록문화재로 남아 옛 기차 여행의 소품들을 볼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이 됐다. 카페 ‘기차가 있는 풍경’에서 축소모형 기차가 싣고 오는 차 한 잔 마시고 나선 저녁 어스름, 역사로 남은 옛 기차와 철길 위로 온갖 조명이 불을 밝힌다. 추억은 언제나 5월보다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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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철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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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상 큰 기쁨, 움직이는 축소모형 세상

마터호른 봉우리가 우뚝 솟았다. 산 중턱 높다란 교각 위 철길로 기차가 달린다. 산악열차가 다니는 산 중턱 철길 위 마터호른 대피소가 까마득하다. 산사태가 나서 산 중턱 나무들이 흔들리고 구조 헬기가 황급히 이륙한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 위로 케이블카가 오간다. 베른 국회의사당 건물 앞으로 자전거들이 지나가고, 도심에서는 자동차들이 달린다. 조명이 어두워지는 것으로 저녁이 오고 밤이 되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어두운 밤 우뚝 솟은 마터호른 봉우리 아래 베른 대성당 창으로 불빛이 새어나온다. 작은 세상에 내린 밤이 성스럽다.

다시 조명이 밝아지면서 아침이 시작된다. 융프라우 지역을 꾸민 축소모형 중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이야기의 배경무대인 하이디 마을(마이엔펠트) 아래 위틀리베르크 전망대가 보이고 융프라우 산악열차가 달린다. 산 중턱 자동차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로이스강의 백조와 오리 떼처럼 여유롭다. 기차는 호숫가를 달리고 호숫가에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밝다. 14세기에 세워진 카펠교는 도시 요새의 일부였고, 1300년께 도시 성곽의 일부로 지어진 8각 타워는 감옥, 기록보관소 등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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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철도공원에 가면 옛날에 실제로 운행했던 협궤열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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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역은 도착하고 떠나는 기차와 사람들로 분주하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 누군가를 마중하는 사람들, 승강장은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아쉬움이 가득한 섬이다.

몽블랑 지역에는 에델바이스가 지천으로 피어난 초원과 만년설 덮인 산 정상 등을 볼 수 있는 빙하특급열차, 글레이셔 익스프레스가 달린다. 세른 입자물리연구소와 유엔 본부가 있는 제네바 지역에는 제네바 열차와 제네바 협곡열차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깊은 숲 동굴에 산다는 전설의 괴물을 보기 위해 동굴 입구에 모인 사람들 앞으로 드디어 동굴 괴물이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며 등장한다.

아이들은 연신 동작 단추를 누른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누른 동작 단추에 해당하는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찾아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바라본다. 아이들 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엄마 아빠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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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불빛정원. 불빛정원 뒤로 불 밝힌 협궤열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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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그 이름으로 남아 있는 옛 경춘선 화랑대역사

옛 경춘선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었던 화랑대역의 역사로 발길을 옮겼다. 건물 자체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옛 기차 여행의 소품들을 볼 수 있는 작은 전시관으로 꾸몄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그려진 옛 경춘선 열차 노선도가 눈에 띈다. 노선도 위에 당시 추억이 깃든 몇 개 역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설치물이 놓였다.

옛 경춘선은 그 자체로 청춘이었다. 우정과 사랑과 낭만을 실은 기차는 북한강을 오르내리며 처음처럼 신선하고 맑은 젊음의 새벽에 닿곤 했다.

기차의 맨 끝 객차 문밖 난간에 서서 보는 풍경은 경춘선 기차 여행의 숨은 낭만이었다. 겨울이면 기찻길 옆에 줄지어 선 눈 쌓인 소나무들은 크리스마스트리보다 예뻤다. 꽃 피는 봄, 단풍 물드는 가을, 여름 소나기도 젊음을 잠재우진 못했다. 그런 풍경들이 달리는 기차의 속도에 따라 철길로 빨려드는 것 같았다. 청춘은 블랙홀처럼 세상을 삼켰고, 5월보다 푸르른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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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기차마을 스위스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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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리, 청평, 강촌역…, 지금도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름들. 그 역들의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읽는다. 모든 역에서 정차하던 완행열차, 비둘기호는 가진 건 젊음밖에 없었던 가난하지만 꿈 많았던 청춘들의 해방구였다.

춘천발 청량리행 통일호 승차권, 청평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승차권, 화랑대역에서 평내를 가던 편도 200원짜리 승차권…. 대합실에서 승강장으로 나갈 때 검표하던 역무원의 손에는 개표가위가 들려 있었다. 개표가위는 승차권을 검사하면서 승차권 일부를 작게 오려내던 도구였다. 1988년 차표 전산 발매 전까지 입석표를 무제한으로 팔았는데, 72석 객차에 300명 넘는 학생이 타서 기차 바퀴 사이의 스프링이 주저앉아 연착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화랑대역의 마지막을 함께한 권재희 역장의 기증품들에 옛 경춘선 기차 여행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행선판, 전호등, 전호기, 개표가위, 열차 내에서 사용하던 검표가위, 승차권에 날짜를 찍던 일부기…. 그리고 객차 일부를 재현한 곳 기차 좌석에 앉았다. 선반 위에 통기타와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큰 라디오가 그때처럼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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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5-56호 증기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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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된 기차와 철로 위로 불이 켜지면

옛 화랑대역사 옆 카페 ‘기차가 있는 풍경’을 들른 건 축소모형 기차가 주문한 차를 실어다 준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카페 1층에 자리를 먼저 확보하고 주문할 때 좌석 번호를 이야기하면 주문한 차와 음료 등을 싣고 축소모형 기차가 달려온다. 잠시 정차했던 기차는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간다. 음료를 싣고 달려오는 작은 기차를 본 아이들 성화에 엄마 아빠는 음료를 한 번 더 주문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사이 해가 기운다.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에 갖은 조명이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어둠과 불빛이 내려앉는 곳은 옛 경춘선 철길과 그 위에 놓인 옛 열차들이다. 이제는 퇴역한 열차 중에는 협궤열차도 있다. 궤도 간격이 762㎜로, 일반열차의 표준궤 간격인 1435㎜보다 좁은 협궤철도 구간을 운행했던 열차라고 한다. 증기기관차와 객차 2량으로 구성됐으며 1951년부터 1973년까지 수인선(수원~남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 구간을 운행했다. 어린이대공원에 전시됐던 것을 2017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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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역사관(엣 화랑대역 역사)에 가면 옛 기차 여행의 추억이 생각나는 전시품을 볼 수 있다. 옛 열차 내부를 재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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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디젤기관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경부선 철도 구간에서 운행한 미카5-56호 증기기관차도 있다. 석탄을 실은 탄수차, 사람이 타는 객차, 짐을 싣는 화차를 증기기관차에 연결해서 운행했다고 한다. 석탄을 때서 보일러의 물을 데워 발생한 증기 압력으로 기차 바퀴를 돌리는 식이었다.

1992년부터 2016년까지 운행했던 체코의 노면전차는 현재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모델은 1899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 때 전차 개통식 이후 1968년 운행을 종료할 때까지 서울에서 운행했던 유럽형 노면전차와 비슷한 모형이라고 한다.

역사가 된 옛 기차와 옛 경춘선 철길 위로 어둠이 짙어질수록 불빛은 더 밝게 빛난다. 화랑대철도공원의 노원불빛정원은 사람들을 태우고 또 다른 추억여행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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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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