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이슈 미술의 세계

‘문화재 반환’ 앞장선다…뉴욕 메트 미술관장 “150만점 예술품 불법 취득 여부 조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미술관이 소장한 약 150만 점의 예술품 가운데 불법 취득된 작품이 없는지 샅샅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세계적인 박물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도 불법 소장품 반환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맥스 홀라인 메트 최고경영자(CEO)는 24일(현지 시간) 외신기자단 간담회에서 “취득 과정에 문제가 있는 작품을 ‘고향’으로 반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설명했다.

● 뉴욕 메트 “투명하게 취득한 작품만 전시할 것”

해마다 방문객 약 600만 명이 찾는 메트는 미 최대 사립 미술관이자 세계 5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홀라인 관장은 “메트는 뉴욕에 있지만 미국만의 미술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인의 미술관”이라며 “세계 각지에서 온 작품이 밀수나 약탈 등과 같은 불법적 취득에 관여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홀라인 관장은 지난해 ‘문화재 이니셔티브’를 출범한 뒤 메트의 소장품 출처 감사팀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최근 기원전 2900~2600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메르 남성 청동상을 이라크에 반환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메트 측은 “1955년부터 70여 년 동안 소장했던 유물”이라며 “출처 조사를 통해 이라크 문화재임을 확인해 주미 이라크대사관에 연락해 반환 절차를 밟았다”고 설명했다.

밀매조직 등과 연관된 작품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022년 맨해튼 검찰은 메트 소장품 가운데 장물이 입증된 45점을 압수해 이집트와 터키 등으로 반환하기도 했다.

홀라인 관장은 “‘세계의 미술관’으로서 각국 정부와 협력해 투명하게 취득한 ‘세계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것”이라며 “한국의 유명 작가 이불에게 건물 정면에 놓일 작품을 의뢰해둬 기대가 크다”고도 덧붙였다.

● 반환 사례 나오고 있지만 아직 갈 길 멀어

메트의 이런 노력은 최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약탈 문화재 반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비교적 최근인 1870년 민간 미술관으로 설립된 메트보다 역사가 긴 유럽의 저명 박물관들은 식민지 유물 약탈 과거까지 더해져 문제가 더 크다.

19~20세기 제국주의가 한창일 때 서구 열강이 전세계에서 도굴해갔던 문화재 중 상당수가 영국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독일 신(Neues)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 약탈의 최대 피해국으로 꼽히는 이집트의 가장 대표적 약탈품들인 덴데라 신전의 천궁도, 로제타스톤, 네페르티티 흉상도 각각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박물관, 독일 신박물관에 있다.

그러다 2010년 한국과 이집트, 그리스 등 약탈 피해를 입었던 20여 개국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공동 대응을 공표한 ‘카이로 선언’ 이후 서구 박물관들은 본격적인 반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반환 문제가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그리스-영국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19세기 영국이 그리스 신전에서 뜯어가 영국박물관에 전시 중인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을 촉구하자,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돌연 회담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약탈국들이 자발적으로 반환하지 않는 한 소송으로 반환 받기란 쉽지 않다. 구속력 있는 국제법이 마땅치 않은 데다가 역사적 혼란기에 ‘거래’가 아닌 불법으로 반출됐음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메트처럼 자발적 반환 사례도 늘고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과거 식민지배 역사를 사죄하며 2022년 베를린 민속박물관에 있던 탄자니아의 고대 유물들을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했다.

국제정세의 변화도 반환 움직임을 촉발하는 배경으로 제시된다. 옛날에야 피약탈국의 열악한 보존 환경을 내세워 서구 열강들이 반환을 거부했지만, 이들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루브르박물관 등에 있는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을 추진 중인데, 최근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이 커지자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개선해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2일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박물관은 현재 4개 국가와 반환을 논의 중이라면서도 대표적 문화재인 로제타스톤은 논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등, 정작 주목도가 높은 유물의 자발적 반환은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