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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죽음을 올바르게 기억한다는 것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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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목포신항에 국화와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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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4월은 의미가 깊은 달이다. 오는 28일이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기 때문이다. 1993년 4월28일,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바트 심슨 인형을 생산하는 타이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밖에서 잠가둔 문 때문에 노동자들이 피해가 커졌다. 이와 관련해서 1996년 열린 유엔 ‘지속가능한 발전 위원회’에 참석한 각국의 노조 대표자들은 이 죽음을 기억하고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자며 촛불을 들었다. 이후 실제 일부 나라에서는 이날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여 산재 노동자들의 사망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고 노동자 안전보건 관련 현황과 정책들을 점검한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기념일이 있다. 바로 산업안전보건의 날이다. 정부는 1968년부터 매년 7월 첫째 주 월요일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정하고 그 한 주간을 ‘산업안전보건 강조 주간’으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해왔다. 2022년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뒤로는 한 주를 넘어 7월 한달 전체를 ‘산업안전보건의 달’로 정했다. 일종의 격상이다.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노동자들의 관점을 대변하는 날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이벤트성 행사라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이러한 일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기념일에 산업안전보건의 한 주체이자 사고와 질병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는 일면 타당하다.



‘산업안전보건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1988년 7월2일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당시 17살의 노동자 문송면을 기려 정한 날이라고 오해를 했다. 그는 온도계·압력계를 제조하는 한 공장에서 수은과 시너를 다루는 작업을 하다, 불과 한달 뒤 몸에 이상 증상이 발생했고 입사 두달 만에 병가를 내고 치료받다 사망했다. 매년 7월이면 노동시민단체가 마석 모란공원에서 그의 추모행사를 여는 것을 보다 보니 떠올린 순진한 생각이었다. ‘산업안전보건의 날’이 그 훨씬 이전인 1968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기념일을 정하는 것에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산업안전보건의 날’은 1988년의 문송면이나 2018년의 김용균을 추모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당혹감을 얼마 전 ‘제10회 국민안전의 날’ 기념식 보도자료에서도 느꼈다.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단체 및 일반시민 200여명이 참석해 진행했다는 ‘국민안전의 날’ 기념식엔 어디에도 세월호 이야기가 없었다. 유튜브에 공개된 기념 영상은 물론, 이틀간 운영된다는 안전체험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안전의 날은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2015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국가와 국민 모두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 10주년이니 비극적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은 얼마나 이루어졌고, 아직 남아 있는 위험 요인은 무엇인지 점검하고 환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4월16일 아침, 우연히 본 티브이 속 영상과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졌던 당혹감, 한동안 계속됐던 충격과 허무함. 비록 옅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미안함이 마음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과연 이제는 우리 사회가 안전해졌는가 되물어야 할 국가 기념일이 이래도 되나 싶었다. 2022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 32개 중 실제 이행된 것은 단 하나에 그치고, 20개는 추진 계획조차 없다는 기사도 있었다.



추모식과 기념식은 다른 것일 수 있다. 애도를 표하는 것과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 역시 같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기념식은 늘 산재 노동자의 죽음이나 재난으로 사망한 국민들을 위해 묵념으로 시작하듯, 죽음을 올바르게 기억하는 그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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