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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벤츠 '대리주차'하다 12중 추돌… 아파트 경비원이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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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소재 노후 아파트 주차 사고
70대 경비원 "차량 급발진으로 사고 나"
경비원 대리주차는 현행법상 불법 규정
12대 피해 차량 수억 원 수리비 책임 공방
한국일보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경비원이 이동주차를 위해 몰던 벤츠가 차량 12대를 연쇄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차주와 경비원은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 속 벤츠 차량에도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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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경비원의 12중 추돌 사고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사고로 피해를 입은 차주들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사고를 낸 차량 차주와 경비원은 급발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경비원의 대리주차는 불법이어서 수억대 수리비와 차량 렌트비 등을 두고 소송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의도 아파트서 12중 추돌 사고


25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7시 50분쯤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경비원 A(77)씨가 이중주차된 차량을 정리하기 위해 벤츠GLC 차량을 운전하다 차량 12대를 잇따라 추돌했다. A씨는 후진하다 주차돼 있던 다른 차량 7대를 들이받았고, 다시 직진 뒤 우회전하다가 주차된 차량 5대와 연이어 부딪혔다. 이 사고로 일부 차량 범퍼와 후미가 찌그러졌고, A씨가 몰았던 차량도 파손됐다. A씨는 10여 년간 해당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했으며, 사고 이후 사직 의사를 밝힌 상태다.

A씨와 사고 차량 차주는 급발진을 의심하고 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차량 브레이크 등이 여러 차례 들어오는데,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도 차량이 앞뒤로 돌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은 급발진 여부를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국일보

12중 연쇄 추돌 사고가 난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이 아파트는 고질적인 주차난을 겪고 있어 평소 이중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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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주차난... 경비원 대리주차는 '불법'


사고가 난 아파트는 준공된 지 50년이 다 된 노후 아파트다. 가구당 주차 가능 대수가 한 대에 불과해 고질적인 주차난을 겪어 왔다. 이중주차가 불가피해지면서 경비원들이 주민들의 차량 열쇠를 보관했다가 다른 주민의 요청이 있으면 차를 대신 빼 주는 대리주차가 관행이 됐다. 특히 출퇴근 시간이면 경비원들이 이중주차가 된 차들을 밀거나 대신 운전해 이동시키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경비원의 대리주차 업무는 불법이다. 2021년 10월 시행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경비원 업무 범위는 △청소와 이에 준하는 미화의 보조 △재활용 가능 자원의 분리배출 감시 및 정리 △안내문의 게시와 우편수취함 투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공동주택에서의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범위에서 주차 관리와 택배물품 보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법에 명시된 주차 관리는 내리막길 중립기어로 주차된 차량 등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만 해당한다. 평상시 주차난에 따른 대리주차는 업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는 시행령 개정 당시 "개인차량 주차 대행(대리주차), 택배물품 세대 배달 등 개별 세대의 업무를 직접 수행하거나 관리사무소의 일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단순히 주차 공간이 없어서 이동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은 경비원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주체에 시정명령을 할 수 있고, 시정명령을 어기고 관행이 지속된다면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등포구청은 해당 아파트를 포함한 관내 전 공동주택에 경비원이 대리주차 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 당장 중지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25일 밝혔다.

수리비만 억대 추정…책임 소재 분분

한국일보

지난 22일 경비원이 이동주차를 위해 몰던 벤츠 차량이 후진을 하던 도중 다른 차량을 들이박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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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피해 차량 보상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고 차량 등 고가 외제차가 다수 포함돼 수억 원의 수리비가 예상된다. 차량 급발진으로 인정되면 제조사에 책임이 부과되지만, 국내에서 급발진이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현행법상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났을 때 입증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는데, 이를 개인이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집계한 급발진 의심 사고 766건 중 급발진 인정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급발진이 인정되지 않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보험업계에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화재보험이나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면 일부 보상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과거 판례를 살펴보면 사고 차량을 운전한 경비원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2021년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경비원이 대리주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와 경비원이 2,7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22년에도 용산구의 또 다른 아파트에서 발생한 경비원 대리주차 사고와 관련 보험사가 경비원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경비원의 과실이 인정돼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성승환 법무법인 매헌 변호사는 본보 통화에서 "급발진 입증을 못할 경우 대리주차를 시킨 차주나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관리주체, 경비원에게 책임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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