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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부모·자식버린 패륜…‘무조건 상속’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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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유기·학대를 일삼은 가족에게도 고인의 뜻과 상관없이 유산의 일부를 ‘유류분(遺留分)’으로 보장한 현행 민법 조항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생전에 병간호 등 부양한 가족에게 따로 준 증여분도 합쳐 유류분으로 나눠야 한다는 조항도 헌법불합치 판단을 받았다. 패륜 가족은 상속에서 제외하고, 극진히 보살핀 가족은 기여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취지다.

25일 헌법재판소(소장 이종석)는 민법에 규정된 유류분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전국 법원에서 제출한 위헌제청심판 14건 등 총 47건의 사건을 병합해 이같이 선고했다. 헌재는 “2025년 12월 31일 시한으로 국회의 개정이 있을 때까지만 헌법불합치 조항인 현행 1112조 1~3호(자녀·배우자·부모의 유류분)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같은 조항 4호에 대해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가 없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은 위헌으로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고 덧붙였다. 내년 말까지 법 개정이 되지 않을 경우, 민법 1112조 전체가 효력을 잃게돼 유류분 관련 소송을 아예 할 수 없게 된다.

지금껏 헌법재판소는 세 번이나 “유류분 제도는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다가 처음으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 이번 결정으로 1977년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돼 왔던 유류분 분배 방법에 처음으로 변동이 생기게 됐다.

헌재는 민법 1112조에서 ‘유류분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따로 정해두지 않은 점을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했다. 민법 1112조에서 유류분을 받을 사람을 정하고, ‘자녀와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는 3분의 1’로 비율을 획일적으로 규정한 것 자체는 합리적이지만, “패륜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민법 1004조에서 ‘피상속인이나 가족을 살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유언 관련 사기·강박’ 등은 상속인 결격사유가 되지만, 그 밖에 학대·유기·패륜 등은 상속 결격사유에 들지 않아 지금까지는 불효자 또는 자식 버린 부모도 유류분을 받을 수 있었다.



헌재 “고인 보살핀 가족, 상속때 기여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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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25일 고인 의사와 상관없이 형제자매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유산상속을 요구할 권리를 주는 유류분 제도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이날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재판관들이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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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상속 결격사유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장기간 망인을 유기하거나, 정신·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의 패륜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따로 규정해 두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유류분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류분 제도가 고인의 자유로운 재산처분을 제한하고, 상속받는 가족들의 재산권 역시 침해하지만 그럼에도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해 가족의 연대가 단절되는 걸 저지하는 기능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핵가족화, 남녀평등의 실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기능은 오늘날에도 중요하며, 유류분을 통해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며 균등상속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는 기능이 여전히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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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상속인 지위에 따라 상속 비율을 획일적으로 정한 부분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다양한 사례에 맞춰 적정하게 정하는 입법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법원이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정하게 하는 것은 재판비용의 막대한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형제자매도 유류분을 받도록 정해둔 점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독일·오스트리아·일본 등의 예시를 들며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가 거의 인정되지 않는데도 유류분을 나눠주도록 법으로 정해둔 것은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형제자매의 유류분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고인이 독신이고 부모 역시 모두 사망했을 때, 형제자매가 법정상속인으로서 유류분을 주장하는 때다. 이번 위헌 결정과 별개로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이 살아 있는 경우엔 애초에 형제자매의 유류분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헌재는 또 부양 기여분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민법 1118조도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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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개정 민법은 1008조의 2에서 고인을 생전에 간호·부양하거나 재산 증식에 기여한 공동상속인의 기여도를 인정해 상속분을 정하는 규정을 뒀다. 그러나 민법 1118조는 생전 기여도를 인정받아 증여를 받은 경우 유류분 계산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생전에 부모님을 간호하고 특별히 증여를 받은 재산도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되면서, 부모님 사후 다른 가족들에게 나눠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헌재는 “기여상속인에게 보상하려고 했던 피상속인의 의사가 부정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를 밝혔다.

이 밖에 공익 기부, 가업 승계 등 목적으로 증여한 재산도 예외 없이 유류분을 산정하기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하는 1113조 1항과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의사로 증여한 경우 증여분을 기초재산에 포함하는 1114조 등은 합헌 판단을 받았다. 이에 대해 헌재는 “유류분 제도가 망인의 증여를 제한할 수는 있지만,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 및 가족제도 단절 저지라는 유류분 제도의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또 유류분 반환 시 원물 반환을 원칙으로 하는 1115조도 합헌으로 결정했다.

☞유류분=법정상속인이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비율. 자녀·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절반을, 직계존속·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은 최소한 받을 수 있게 권리를 주는 개념이다.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남은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로 1977년 도입됐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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