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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청계광장]새들의 '유리창 죽음'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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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사)과학관과문화 대표, 공학박사 권기균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포유동물관 옆 작은 전시실에서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특별기획전이 열렸다. 전시 주제는 '불안한 자연(Unsettled Nature): 인간의 흔적이 도처에 있는 세상에서 자연이란 무엇인가?'였다. 7명의 현대 예술가가 '신경험주의적 예술'의 형태로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변화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들을 표현했다.

예술가답게 주제와 표현형식이 기발하고 다양했다. 금 추출 과정에서 방출되는 수은 때문에 수은 배출원이 돼버린 금 광산, 2010년 석유 굴착장치의 폭발로 발생한 세계 최대규모의 해양 기름유출 사건, 건반을 상아로 만든 피아노에서 음악이 연주되다 갑자기 멈춘다. 이것이 2035년이면 이 세상의 코끼리가 밀렵 때문에 이렇게 모두 없어진다는 경고메시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물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새들에 관한 전시였다. 이 전시를 만든 작가 앤드루 양은 생물학을 전공한 아티스트다. 그는 철새가 고층건물 창문에 부딪쳐 죽는 것을 목격했다. 새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동시에 새뿐만 아니라 그 새들이 운반하던 뱃속의 씨앗도 발아할 기회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먼 곳으로 날아가다 고층건물에 부딪쳐 죽은 새들을 "미래 세대의 식물(씨앗)을 위한 날개 달린 택배기사"라고 불렀다. 그는 고층건물에 부딪쳐 죽은 새들을 모았다. 그 뱃속에 들어 있던 씨앗들도 따로 모았다. 그리고 그 씨앗들을 트레이에 심으면서 '잠재력의 씨앗'이라고 불렀다. 이 중 일부 발아된 것을 번식용 온실의 안개시스템에서 키웠다. 그렇게 자란 것들을 자기가 제작한 화분 4개에 옮겼다. 각 화분에는 다른 새가 섭취한 씨앗으로 자란 식물을 담았다. 그는 이것을 '플라잉 가든스 오브 메이비'(Flying Gardens of Maybe)라고 이름 지었다. 뉘앙스로 보면 '하늘을 날다 사고를 당한 씨앗들의 정원'이라는 의미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 새들이 죽지 않고 멀리까지 가서 그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났다면 아마 얘네들이 정글을 이뤘을 것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생명의 연속성을 찾아내 의미를 살려낸다. 예술가다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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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소니언에 전시되었던 앤드루 양의 전시 사진 Flying Garden of Maybe.


스미스소니언 홈페이지엔 그 새들의 죽음에 관한 팝업퀴즈가 나온다. '충격적 사실을 알려준다. 매년 날아가다 고층건물에 부딪쳐 죽는 새의 수가 미국에서만 최대 약 10억마리나 된다는 사실을.' '설마?' 하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검색을 해봤다. 국립생태원 홈페이지에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시민참여 조사지침서'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훨씬 충격이었다. 국립생태원은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연간 조류충돌 실태를 파악했다. 국립생태원이 지난 연말에 펴낸 책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진세림 저)에 따르면 조사 당시 건물 유리창 충돌로 죽는 새가 한 해에 764만9030마리, 도로의 투명방음벽은 23만2779마리였다. 결국 한국에서만 매년 약 800만마리의 새가 유리창과 방음벽에 부딪쳐 죽는다. 하루에 약 2만마리다. 새들은 평균시속 36~72㎞로 날아간다. 그 속도로 유리창에 부딪치면 거의 죽는다. 실제로 새들의 머리는 달걀을 깨는 정도의 충격이면 죽는다고 한다. 새들은 투명한 유리창도, 유리창에 풍경이 반사되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 투명한 유리창은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그냥 가서 부딪친다. 반사되는 배경을 실제 풍경으로 착각해 날아가 충돌한다. 이걸 막으려면 접근금지 경고로 유리창에 상하 간격 5㎝, 좌우 간격 10㎝마다 표시를 해줘야 한다. 지금은 이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2023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관공서는 의무적으로 이 표시를 유리창에 해야 한다. 이미 많은 시민단체가 나섰다. 기업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권기균 과학관과문화 대표·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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