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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MT시평]내가 보이면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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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전 BNK자산운용 대표


2년 전 유럽에 5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들이닥쳤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EU 전 영토의 약 60%가 가뭄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물부족으로 정원에 수돗물을 뿌리는 것을 금지했고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라인강의 수위가 급격히 내려가 수상운송이 중단되기도 했다. 극심한 가뭄으로 스페인에선 60년 만에 저수지 바닥에 있던 '과달페랄의 고인돌'이 모습을 드러냈고 독일 다뉴브강에선 2차대전 당시 침몰한 독일 군함 20여척이 발견됐다. 저수지 수위가 낮아지면서 헝거스톤(Hunger Stones)이 유럽 도처에서 발견됐는데 체코 엘베강 유역의 헝거스톤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굶주림의 돌' '기근석'으로 불리는 헝거스톤은 과거 기상관측이 어렵던 시절 가뭄이 들었을 때 저수지 수위를 표시하기 위해 날짜와 이름을 새긴 돌이다. 특히 1616년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엘베강의 헝거스톤에는 '내가 보이면 울어라'(Wenn du mich seehst, dann weine)는 무섭고도 슬픈 경구가 씌어 있었다.

기후변화가 경제를 위협하면서 인플레이션 시대가 좀처럼 저물지 않고 있다.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원자재가격 상승은 기후변화와 맞물리면서 '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의 근원이 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WTI)가 80달러를 넘어서면서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금값이 2015년 저점 대비 130%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농산물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국제 커피가격이 1년 새 70% 이상 상승했는데 이는 인스턴트커피의 주원료 로부스타의 최대 생산국인 베트남이 가뭄으로 생산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가격도 주요 생산지인 서아프리카의 극심한 가뭄으로 1년 새 4배 이상 상승하는 등 사상 최고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곡물가격과 기후변화는 생우(Live Cattle)가격도 폭등시켜 3년 만에 2배 이상 상승하는 등 소위 '기후인플레이션'(Climateflation)이 본격화한 것이다.

'내가 보이면 울어라'던 엘베강의 헝거스톤처럼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마주하면 안 되는, 무섭고도 슬픈 헝거스톤은 무엇일까. 첫째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시기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딱 두 번이다. 그런데 얼마 전 1400원을 역대 네 번째로 터치했다. 미국의 금리인하 시기가 미뤄지고 국제유가가 급등한 것이 주원인이다. 다음은 연속적인 무역수지 적자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일시적이라면 모를까 연속 적자는 헝거스톤이다. 2022년 1월 무역적자가 발생하면서 코스피지수 3000선이 붕괴됐고 이후 약 18개월 연속 적자를 내는 등 하락국면이 지속됐다. 최근 10개월 연속 흑자를 냈지만 고유가와 불안한 경기흐름으로 안심하기는 이르다. 마지막으로 금리다. 미국금리(국채 10년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단 한 번도 5%를 넘어선 적이 없다. 미국 실세금리 상승은 인플레이션 지속을 의미하며 금리인하가 멀었다는 신호다. 원/달러 환율과 국내 금리 상승을 촉발할 것이다. 주식시장의 헝거스톤, 이들이 보이면 우리는 정말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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